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2015년 5월4일 저녁 10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씨지브이(CGV) 효자점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알트만> 상영이 끝난 후 필자는 류승완 감독과 함께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영화는 영화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목적으로 올해 영화제에 신설된 ‘시네마톨로지’ 섹션에 초청된 작품이다. 매우 평이한 구성을 통해 친절하게 1970년대부터 미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골 감독 로버트 알트만의 일대기를 다룬다. 알트만은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 신화에 깊은 반감을 가진 감독이었다. 그가 만드는 영화는 사사건건 할리우드 영화사 사장의 심기를 건드렸고 출세작 <야전병원 매쉬>(1970)처럼 때로는 반전에 가까운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한 편의 영화가 성공하면 다음 영화는 더욱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그의 경력은 1980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내내 그는 할리우드에서 루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지만 학생들과 함께 소규모 실험적 영화를 찍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알트만은 그 후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할리우드의 속물성을 풍자하는 <플레이어>는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후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알트만은 유럽에서 특히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반할리우드 영화의 기수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미국영화 역사를 통틀어 알트만처럼 성공과 실패를 극적으로 오가며 경력을 유지한 감독은 거의 없다. <감독 알트만>은 그와 함께 일했던 배우들,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알트만의 영화세계를 특징짓는다. 그는 ‘소신 있고, 할리우드를 엿먹이고, 미국의 문화를 비판했고, 미국인이 어떤지 보여줬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원숙한 스토리텔링을 펼쳤고, 후배들에게 영감을 줬던’ 감독으로 정의된다.
알트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켰던 비타협적인 결기는 오늘의 영화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만사 유들유들한 류승완 감독도 그 점을 인정했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렇다. 류승완은 <베를린>을 개봉할 당시 공동 투자자들의 이름이 영화 맨 앞에,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도 맨 앞에 넣기를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투자자의 이름이 크레딧 맨 처음에 등장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영화가 돈을 댄 사람의 것이라는 천민자본주의의 징표처럼 된 이 최근의 관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을 지휘하고 있는 필자는 수많은 영화인들을 만나고 극장에서 관객들과 대화하는 행사를 치르는 와중에도 불쑥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왜 영화제를 하는가?’ 국제영화제는 화려한 레드 카펫으로도 기억되지만 실은 수많은 무명 영화인들이나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한 예술가들을 발견하고 새삼 존경을 바치는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 필자가 영화제 기간에 들었던 가장 큰 찬사는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어느 중견 여배우의 말이었다. “이곳에는 거품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고생했던 스탭들이 파티 자리 중간에 당당히 자리잡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제는 그래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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