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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관객 천만’ 영화계의 아이러니

등록 2015-03-03 19:36수정 2015-10-28 16:02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최근 개봉한 <조류인간>을 연출한 신연식은 한국영화계에서 부당하게 과소평가된 감독이다. 나는 부산영화제 객원프로그래머로 그의 장편데뷔작 <좋은 배우>를 추천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그의 곁에는 다수의 출연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화제가 배정한 숙소에서 떼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감독과 연극배우들이었지만 열정에 취해 마냥 즐거워했다. 배우들과 신연식은 또래의 비슷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에게 신연식은 친구이자 리더이며 선생님과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신연식은 5편의 장편과 3편의 장단편을 연출했고 수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쓴 시나리오를 몇 편 받아본 적이 있다. 그는 사나흘 만에 후딱 각본을 탈고하는 놀라운 생산성의 소유자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주지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활동했다. <조류인간>이 개봉한 현재 각각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와 단편영화 촬영을 마쳤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는 신작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가 만든 작품은 모두 저예산 영화였지만 <좋은 배우>를 뺀 다른 영화들은 예산규모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번듯한 만듦새로 세상에 나왔다. 그 중에 <페어 러브>와 <배우는 배우다>와 같은 영화는 흥행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자기 작품색깔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애쓰는 가운데 상업성을 꾀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어쩐지 균형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좀 더 자기 상상력에 충실하기를 바랐다.

<조류인간>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제공한 삼인삼색 프로젝트 가운데 한 편이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 신연식 감독을 만났을 때 기획자였던 나는 그에게 영화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실제로 새가 되는 이상한 스토리였지만 그 초현실성이 스크린에 구현되면 타당한 영화적 근거가 생기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연식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냥 본인 느낌대로 찍었고 <조류인간>은 전주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가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호의는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조류인간>은 극장 개봉했으나 좋은 상영시간대를 배정받지 못한 채 밀려났다. 역설적이게도 몇 달 전 개봉당시 홀대받았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재개봉 하면서 <조류인간>의 상영관수를 대신 차지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나는 이런 상황이 슬프다. 게토화된 자그마한 극장상영관수를 놓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극장은 상업논리로 일관하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책적 방향을 잃어버린 채 구경만 하는 중이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모 수입사 대표는 아무리 괜찮은 외화를 들여와도 극장에서 2만명 넘기기가 힘들다며 전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의 말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툭하면 관객 천만 운운하는 시대에 영화문화는 늪에 빠져 가라앉고 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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