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최근 개봉한 <조류인간>을 연출한 신연식은 한국영화계에서 부당하게 과소평가된 감독이다. 나는 부산영화제 객원프로그래머로 그의 장편데뷔작 <좋은 배우>를 추천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그의 곁에는 다수의 출연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화제가 배정한 숙소에서 떼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감독과 연극배우들이었지만 열정에 취해 마냥 즐거워했다. 배우들과 신연식은 또래의 비슷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에게 신연식은 친구이자 리더이며 선생님과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신연식은 5편의 장편과 3편의 장단편을 연출했고 수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쓴 시나리오를 몇 편 받아본 적이 있다. 그는 사나흘 만에 후딱 각본을 탈고하는 놀라운 생산성의 소유자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주지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활동했다. <조류인간>이 개봉한 현재 각각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와 단편영화 촬영을 마쳤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는 신작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가 만든 작품은 모두 저예산 영화였지만 <좋은 배우>를 뺀 다른 영화들은 예산규모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번듯한 만듦새로 세상에 나왔다. 그 중에 <페어 러브>와 <배우는 배우다>와 같은 영화는 흥행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자기 작품색깔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애쓰는 가운데 상업성을 꾀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어쩐지 균형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좀 더 자기 상상력에 충실하기를 바랐다.
<조류인간>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제공한 삼인삼색 프로젝트 가운데 한 편이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 신연식 감독을 만났을 때 기획자였던 나는 그에게 영화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실제로 새가 되는 이상한 스토리였지만 그 초현실성이 스크린에 구현되면 타당한 영화적 근거가 생기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연식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냥 본인 느낌대로 찍었고 <조류인간>은 전주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가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호의는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조류인간>은 극장 개봉했으나 좋은 상영시간대를 배정받지 못한 채 밀려났다. 역설적이게도 몇 달 전 개봉당시 홀대받았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재개봉 하면서 <조류인간>의 상영관수를 대신 차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슬프다. 게토화된 자그마한 극장상영관수를 놓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극장은 상업논리로 일관하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책적 방향을 잃어버린 채 구경만 하는 중이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모 수입사 대표는 아무리 괜찮은 외화를 들여와도 극장에서 2만명 넘기기가 힘들다며 전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의 말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툭하면 관객 천만 운운하는 시대에 영화문화는 늪에 빠져 가라앉고 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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