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올 때만 해도 필자는 줄리에트 비노슈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남들은 중성적 매력을 풍긴다고 하던데 공감하지 않았다.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는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라면 거의 전부 흥미롭게 보고 있다. 소년 같았던 그녀는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한 여성으로 스크린에 나타났고 달뜨고 불안했던 눈빛은 고통을 중화하고 그윽한 슬픔을 머금은 서늘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2013년 개봉한 <카미유 클로델>에서 정신병원에 갇힌 카미유 클로델을 연기하는 그가 영화 초반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억지로 목욕을 하는 장면은 관객인 나를 허물어뜨려버렸다. 여배우의 단련된 몸을 과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중년 여자의 망가지기 시작하는 육체가 등장인물의 고통을 표현하는 듯 했다. 스스로 돌보지 않아 막 무너지려는 육체를 노출하는, 배우로서의 이런 모습은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지금 개봉 중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란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줄리에트 비노슈를 위한 작품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젊었을 적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연극의 리메이크판에 출연하는 저명한 여배우의 이야기를 담는다. 비노슈가 스타 여배우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녀의 여비서로 나오는 이 영화에서 비노슈는 여러 얼굴을 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배우의 내면을 놀라운 생생함으로 연기한다. 신기한 것은 그녀의 상대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번쩍거린다는 점인데 화면에서 누군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상대편도 그에 맞는 거센 에너지를 뿜어내는 예로 이만한 영화도 드물지 싶다. 두 사람의 주고 받는 연기의 합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관람 재미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양한 필터로 해석될 여지를 많이 품은 작품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하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던져놓고 버티는 비노슈의 근기에 탄복한다. <카미유 클로델>에선 비노슈가 거의 폭력에 가까울 만큼 자신에게 근접한 카메라의 응시를 버티어내며 주인공의 고통을 드러냈다면, 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선 자연인 비노슈가 여배우 비노슈와 스스럼없이 공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 올리비아 아사야스가 일부러 그런 장치를 깔아놓은 탓도 있지만 사실과 허구, 진실과 가면, 그 양자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이 영화는 상큼하게 그것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예술창작은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수반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진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대범한 용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찬양한다. 비노슈는 그런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대인의 풍모를 느끼게 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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