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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누군가가 돌아오길 기다려본 적 있다면…

등록 2014-12-02 18:56수정 2015-10-28 16:06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5일의 마중
장예모의 <5일의 마중>을 뒤늦게 봤다. 역시 거장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5세대 영화인들 가운데 장예모만이 여전히 예술적 기운을 잃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타락을 비난하지만 중국에서 상업주류영화를 만드는 이들 가운데 장예모 만큼 격을 지키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보며 놀란 것은 어떤 극적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사근사근 넘어가는 화면의 리듬감이다. 관객은 울고 싶어지는데도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펑완리(공리)와 루옌스(진도명) 부부는 생이별을 했다. 루옌스가 반동분자로 몰려 하방당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펑완리와 그의 딸 단단은 루옌스가 농장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루옌스는 몰래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대하는 펑완리와 단단의 반응은 다르다. 펑완리의 가슴은 찢어질 듯 한데 단단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반동분자 아버지 때문에 무용수로서의 자기 장래가 어두워질까 걱정이다. 단단은 다음날 역에서 만나자고 한 아빠의 전갈을 관리들에게 밀고한다. 루옌스는 잡혀간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문화혁명은 끝나고 루옌스는 집에 돌아오지만 펑완리는 심인성기억장애에 걸려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펑완리는 딸 단단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단단이 아빠에게 한 짓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옌스는 펑완리가 자신을 알아보게 하고자 눈물겹게 노력한다.

장예모는 짧은 기쁨과 긴 회한의 시간들을 번갈아 오가는 이 가족의 삶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드라마를 끌고 간다. 펑완리는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5일에 오겠다’는 루옌스의 마지막 전갈만 의지해 매달 5일 역 앞에 가서 기다린다. 루옌스는 펑완리에게 자신이 과거에 써놓기만 하고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읽어주는 동네 주민으로 다가간다. 어느 때부터 루옌스는 과거의 편지 대신에 현재 자기 심경을 담은 편지를 써서 읽어준다. 단단을 용서하지 않는 펑완리를 편지로 설득한 루옌스가 이제 무용수를 그만 두고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딸 단단을 찾아가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짐을 싸들고 돌아오는 그들을 붙잡는 햇살은 눈부시다. 또는 루옌스가 펑완리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고 이윽고 집에 도착한 펑완리가 남편의 연주를 잠시 알아보며 감격의 포옹을 할 때 그들의 얼굴에 번갈아 떨어지는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살의 질감도 잊을 수 없다. 잠깐밖에 이들 가족에게 선사되지 않는 빛, 이들이 감내해야할 불행한 삶에 떨어지는 위로 같은 빛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영화 초반 펑완리가 탈출한 루옌스를 만나러 역에 갔을 때 그들의 시선은 금방 만나지 못한다. 루옌스가 관리들에게 잡혀갈 때에야 그들의 시선은 만난다. 영화 내내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그리워 한다. 재회한 뒤에도 그들의 시선은 온전히 섞이지 않는다. 이 정황을 연기하는 공리와 진도명의 시선 연기가 기막히다. 영화의 끝 장면, 거동하기 힘든 펑완리를 자전차에 태워 역 앞으로 데리고 간 루옌스는 자기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오지 않을 자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각자 따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은 세찬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그들의 클로즈업을 잡았다. 잊기 힘든, 늙은 긍정의 얼굴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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