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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기다림, 어른들의 책무

등록 2014-11-04 19:19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누구에게나 찬란한
임유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제 때 나는 이 영화를 아내와 딸아이에게 추천했는데 아내는 감동했지만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그저 그런 것 같았다. 축구를 모르는데다 영화 속 아이들을 억누르고 있는 가난의 무게를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골랐던 프로그래머로서 딸아이의 반응은 서운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유소년 축구팀 ‘희망 FC’ 김태근 감독의 리더십을 보면서 반성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몰아붙여 프로선수가 될 싹을 만들려는 전임 호랑이 감독과는 달리 김태근 감독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끈질기게 아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훈련하며 잘 하는 아이는 칭찬해주고 고집부리거나 실수하는 아이에게는 격려해주는 이런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내 주변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희망 FC’ 축구팀 아이들은 김태근 감독의 덕성덕분에 축구를 즐기게 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실력이 느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일례로 또래들 사이에선 드리블 돌파가 통하지만 강한 상대팀을 만나면 상대 수비수 한 명도 제끼지 못하는 한 선수는 드리블보다는 패스를 요구하는 감독 선생님과 동료들의 말을 늘 무시한다. 그가 드리블보다 패스하다는 걸 몸에 익혀야 자기 실력이 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김태근 감독은 재촉하지 않은 채 기다리며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말을 걸고 선수들끼리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곁에서 부추긴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희망 FC’아이들은 지역 리그에서 우승해야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임유철 감독의 카메라는 김태근 감독의 리더십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상 삶을 따라간다. 대체로 아이들은 가난하다.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축구를 계속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모자라는 재능과 열악한 성장환경의 이중고 속에서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세다. 임유철은 김태근 감독이 그랬듯이 이 아이들의 곁에서 카메라를 들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가운데 임유철은 김태근 감독이 운동장에서 하는 역할을 그 아이들의 실제 삶에서 해주고 싶어 한다.

영화의 말미에 ‘희망 FC’ 아이들은 리그 지역 우승을 놓고 운명의 승부를 벌인다. 그 전날 김태근 감독은 실력이 모자라는 아이들이 치를 패배의 운명을 견뎌야할 생각에 소주잔을 놓고 울음을 삼킨다. 다음날 마침내 경기가 열렸을 때 김태근 감독은 실력이 좋은 임대선수들을 빼고 오로지 ‘희망 FC’ 선수들로만 후반전을 치르는데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는다. 이때 화면은 임유철 영화감독과 김태근 축구감독이 아이들과 쌓아놓은 우정의 두께 덕분에 경기장의 열기 이상으로 달아오른다. 누구에게나 이 장면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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