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지미스 홀
지미스 홀
켄 로치의 <지미스 홀>을 보며 ‘이 어르신은 참, 대책이 없네’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1932년 아일랜드 리트림 주의 한 시골마을 배경으로 10년 만에 귀향한 주인공 지미 그랄턴이 마을회관을 재개장했다가 그가 마을사람들을 의식화한다고 경계하는 파시스트와 신부의 힘에 밀려 다시 미국으로 추방당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실화에 기초한 내용대로, 사회주의 운동가 지미는 권력자들에게 맞서다가 패배한다. 거기에 어떤 감상적인 회한은 없다. 오히려 다소 들뜬 분위기로 영화는 끝난다. 지미를 따르던 마을의 10대 아이들이 경찰에 포박돼 끌려가는 지미를 열렬하게 환송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미에게 외친다. “우리는 계속 춤출 거예요.”
지미가 주도하는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문학과 미술을 공부하며 토론한다. 그들은 지미가 방금 뉴욕에서 막 들고 온 따끈따끈한 재즈 신보 음반을 틀어놓고 신나게 자신들의 몸을 놀린다. 이 활기찬 개방성은 윌리엄 예이츠의 시를 낭송하는 소녀의 목소리를 칭찬하며 노인과 젊은이들이 문학을 토론하는 자리에도 이어진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과 노동이 완전하게 결합된 이런 공간은 본 적이 없다. 뜻을 모아 마을회관을 재건할 때도 누구 하나 복구현장에서 꾀부리는 사람이 없다. 맑고 투명한 이런 연대감의 강조는 다른 영화에서라면 선동영화의 제스처로 보였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서 흥겨운 댄스파티를 즐길 때, 그들의 방종과 타락을 비난하는 신부의 강론을 병치시키는 고전적인 편집기법도 마찬가지다.
앞서 거론한 예이츠 시 강독 장면에서 선생은 예이츠가 평생 사모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모드 곤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그 시에 담긴 마음이 “갈망일까요? 희망일까요?”라고 묻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지미 그랄턴도 사랑했던 여인 우나와 결혼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사이다. 10년 전에 그는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치면서 우나에게 동행을 간청하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는 우나는 거절한다. 10년 뒤 지미는 다시 미국으로 추방당하면서 슬퍼하는 우나에게 인생을 한 번 더 산다면 조용한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지미의 이상과 사랑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는 갈망과 희망이 다 들어 있다. 그의 갈망은 부서졌지만 희망은 다음 세대에서 빛을 볼지 모른다. 지미의 어머니는 그런 담담한 낙관주의의 화신이다. 몸은 늙었지만 인자함을 지니고도 별다른 표정이 없는 그녀의 존재감은 영화 속 어떤 등장인물보다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좌파 이상주의를 담고 있으나 그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도 보여주고 무엇보다 빨갱이들을 경멸하지만 빨갱이들의 똑똑함을 인정하는 영화 속 노회한 신부처럼 강인한 적들의 존재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이 굵은 궁극적 낙관을 담는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비밀은 또 있다. 켄 로치가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춤 장면에 비치는 ‘상냥하고 긍정적인 빛’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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