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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나를 울린 아이들의 배려와 헌신

등록 2014-09-25 19:45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다. 필자는 올해 초 이 영화를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영화제 출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보다가 본분을 망각하고 그만 주책없이 펑펑 울어버렸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여서 그런 게 아니다. 영화는 누가 봐도 아마추어의 때를 벗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것에 비해 덜 정리됐다는 느낌이 강한데도 사정없이 누선을 자극한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자세가 좋고 그들이 담아낸 사람들의 마음이 또한 관객을 울컥하게 만든다.

영화 속 오사카조고 럭비부는 사상 최강의 멤버를 보유하고 있어서 100년 역사의 전일본고교럭비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재일동포들에게 품게 한다. 운대가 안 맞아서인지 때마침 오사카부 지사는 재일조선학교 차별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형편은 쪼그라드는데 아이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이들을 성원하는 오사카조고 학부모들뿐 아니라 재일동포 공동체의 단결력도 더 강화된다.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지만 <60만번의 트라이>는 더 큰 보편적 설득력을 지닌다. 영화 속 럭비부 아이들은 이런저런 그들만의 갈등을 겪으면서 하나의 팀이 되는데, 그걸 스스로의 능력으로 감당해내는 게 경이로웠다. 감독이나 여타 어른이 강제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그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헌신으로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그 배경에 동포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의 팀에서 벗어난 개인들의 면면을 볼 때도 아이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다. 영화 중반에 자신들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카메라를 들고 고생하는 박사유 감독에게 팀의 리더 선수가 다가와 점퍼를 걸쳐주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를 든 감독은 그 선수의 마음 때문에 아마도 우는 것 같다.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떨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감상적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는 카메라 밖과 카메라 앞의 상황이 일체가 되는 상황을 자연스레 추론할 수 있게 만드는 이런 인간적인 정황이 좋았다. 역지사지가 언제나 가능한 아이들의 이런 강인한 마음이 영화 속 클라이맥스에서 오사카부 지사의 차별정책에 맞서 경기가 끝나면 우리 편 상대 편 할 것 없이 하나가 되는 럭비의 ‘노사이드’ 정신을 강조하는 아이들의 뛰어난 웅변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짧은 사족 하나. 이 영화의 공동연출자 중 한 명인 박사유 감독은 필자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화기자가 되겠다고 지금은 없어진 <필름 2.0> 인턴 생활을 하며 필자에게 심한 구박만 받다가 기자로 채용되지 못할 것 같자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그동안 일본에서 살며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전주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직전 나는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이라는 걸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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