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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암울한 학교폭력, 그곳서 관계를 갈구하다

등록 2014-08-28 20:00수정 2015-10-28 16:09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2학년이었던 내가 등굣길 버스에서 덩치가 작은 3학년 선배에게 동급생인 줄 알고 반말을 한 게 이유였다. 점심시간에 자기를 찾아오라는 선배의 말을 무시했던 나는 덩치 큰 학우들을 이끌고 나를 찾은 선배에게 이끌려 처음엔 화장실에서, 나중엔 그의 반 교실에서 집단 린치를 당했다. 허세를 자존심으로 착각하던 시절이라 의연한 척 굴었던 나는 집단린치를 당하며 진짜 공포를 느끼고 금방 비굴해졌다. 이 일과 아무 상관도 없던 선배 학생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야수들처럼 우르르 몰려와 나를 패며 희열을 느끼던 표정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을 보며 그 암울한 폭력의 순환에 갇힌 내 사춘기 시절의 일부를 떠올렸다. 그때에 비해 훨씬 심해진 영화 속 학교폭력의 문제는,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청소년기에 관한 흔한 통념을 비웃는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를 더욱 원초적으로 축약한 세계이기도 하다. 부모들의 경제력에 따른 학생들 사이의 계급 차이는 권력에 따른 위계관계를 만들고 그걸 우정으로 위장한다. 반장이 축이 된 권력의 위계는 싸움 잘하는 학생을 축으로 한 또다른 권력질서와 결합해 학내생활을 다스린다. 이것이 <야간비행>에 그려진 학생들 사이의 폭력적 질서인데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다. 선생들은 그런 폭력적 위계질서를 방관하거나 조장하며 바깥 사회의 부모들은 이 아이들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는 존재냐 아니냐로 구분될 뿐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에서 제목을 인용한 이 영화는, 야간비행 때 보는 한줄기 불빛의 감동처럼 사방이 꽉 막히고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또래의 친구에게 느끼는 관계의 갈구를 안타깝게 표현한다. 서울대 진학이 목표인 우등생 용주는 게이이며 중학생 때부터 알았던 전교 짱 기택을 사랑한다. 기택은 용주의 사랑을 처음엔 경멸하지만 나중엔 받아들인다. 그게 사랑인지 우정인지는 알 수 없으니 홀어머니와 사는 용주와 노조활동으로 상처를 입고 은둔하는 아버지를 둔 기택은 그들의 불우함을 서로 알지 못한 채 그들에게 가해지는 주변의 폭력적 질서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견디다가 마침내 서로 끌어안게 된다.

<야간비행>은 아름다운 영화이며 영화 속 학교폭력 묘사가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상황에서 그만큼 진정한 관계를 갈구하는 주인공들의 마음이 절실하게 표현돼 있다. 영화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마음을 시적으로 응축해 표현한 화면에서 나온다. 용주의 집 담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빛의 갈래들, 두 주인공이 그 담벼락에 앉아 손을 스치는 대목 같은 것은 순수와 관능이 포개지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런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꽤 많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어느덧 중견감독의 위치에 선 이송희일은 이름값에 준하는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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