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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울한 ‘기억 여행’에 공감하는 이유

등록 2014-08-07 19:01수정 2015-10-28 16:09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실뱅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대박 났다. <군도>와 <명량>, <해적>이 싹쓸이하다시피 한 극장가에서 이 영화는 개봉 3주만에 6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별다른 홍보도 없이 극장에 걸린 이 영화가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흥행하고 있다. 실은 필자가 이 영화의 이해관계자다. 필자가 수석 프로그래머를 겸직하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이 영화를 직접 수입 배급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화제가 수입 배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며칠간 영화 <명랑>의 흥행 돌풍에 관해 한 마디 해 달라는 여러 기자들의 취재를 매정하게 거절하거나 심드렁하게 대하면서 심통이 났었다. 거대한 흥행신드롬에 매달리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으나 다들 하나마나한 소리만 한다. 이순신 리더십에 대해 새삼 말을 보탠다 한들 대통령도 그 영화를 보는 마당에 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소비하면 그만이다. 놀라운 건, <명랑>의 흥행 돌풍에 딴지를 거는 몇 몇 기사에 달린 적대적인 댓글들이다. 그 글들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떠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흥행이 기분 좋다. 이 영화가 흥행한 것은 대단히 작품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한 두 편의 영화에 쏠리는 극장가에서 다른 감동과 휴식을 원하는 부지런한 관객들이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며 다소 유치한 도식에 기대고 있는 이 영화에 관객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만족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이 영화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대목처럼, 마들렌 과자를 먹고 과거로의 기억 여행을 떠나는 실어증에 걸린 청년 피아니스트와 그 주변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초현실적 공간구성과 색감으로 감싸면서 지극히 일상적인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영화는 결국 ‘기억’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 영화의 주인공 폴이 무기력한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은 기억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부모없이 자란 까닭을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우울하다. 아파트에 몰래 비밀정원을 가꾸고 있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서 폴은 과자와 차를 마시며 여러 차례 기억 탐방을 하지만 그게 또 맞는 기억인지, 틀린 기억인지를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여러 조각의 기억을 불러내 스스로 점검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명랑> 못지않게 이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의 어떤 병리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영화 속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 동화적 톤으로 찍어놓았지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우울증의 증상과 원인, 그리고 극복처방에 관해 적지 않은 관객들이 적극 동감하는 것은 집단 실어증을 강요하는 이 나라의 억압적인 공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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