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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지존파 담당형사가 통찰해낸 한국사회 민낯

등록 2014-07-17 19:03수정 2015-10-28 16:10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전 서초경찰서 형사 고병천씨다. 지존파 사건을 수사했으며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도 있었던 그의 증언은 흥미롭다. 그는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낸다.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감독이나 작가라도 이런 인물을 허구로 창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병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악마의 현현으로만 알고 있었던 지존파 청년들의 이면을 알게 된다. 알고 보면 그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청년이었다는 투의 후일담이 아니다. 그런 얘기는 이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종교인들이나 교도소 간부도 한다.

고병천은 현장에서 체화된 고민을 거쳐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는 증언을 내놓는다. 지존파 범인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죄의식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언론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확대 과장해 세상에 내보냈고 대중은 분노했다. 그들에 대한 재판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고병천은 질문한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관리를 책임진 사람들은 지존파 범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생명을 결과적으로 죽였다. 삼풍백화점 현장에서 본 사상자들의 실상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칼과 도끼로 인간을 살해하는 것 이상으로 처참한 현장의 목격담을 그는 우리에게 들려준다. 지존파 범인들은 신속하게 사형에 처해졌지만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관계자들은 가벼운 징벌을 받는 데 그쳤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 충실한 것은 어느 쪽이나 비슷한데 법은 과연 형평성이 있는가, 라고 그는 스스로 회의에 젖었다고 고백한다.

정윤석은 범상치 않은 지성으로 다양한 층위에 걸쳐 개인적인 범죄와 집단의 범죄 너머에 자리한 자본의 욕망을 심층 탐구하고 그것을 위선적으로 지탱하는 권력의 폭력을 비판한다. 우리 모두 자본과 권력의 대리인이자 매개인이며 누가 누구를 떳떳하게 비난할 자격도 없다. 이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든 데는 우리의 책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고병천은 또 말한다. 그는 지존파 범인들이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어디 가서 동네 이름을 창피해 말 못한다는 걸 듣고 기가 막혔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동안 그 주변 사람들은 과연 뭘 했는가 묻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른의 책임감을 통감하는 한편으로 그는 그래도 사형제도는 존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힘겹게 토로한다. 그에 반해 자료 화면에 비친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소위 전문가들은 국가권력에 대드는 자들에게 경찰 공권력은 총이라도 쏴야 하는 게 아니냐며 흥분해서 떠들고 있다. 이 나라의 지성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화면을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나라의 위선적인 꼴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병천 같은 훌륭한 인물이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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