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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선동적이고 지적이고 명쾌한 다큐

등록 2014-06-26 19:09수정 2015-10-28 16:10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이훈규 감독의 ‘블랙 딜’
몇 해 전 런던을 다녀올 때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선진국 어느 공항과 비교해도 인천공항만큼 편안하고 쾌적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입국 심사대에선 여권을 돌려받으며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받는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동시에 몇 년 전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던 인천공항 민영화 추진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다음주 개봉할 이훈규 감독의 <블랙딜>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민영화 실태를 파고든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파업에 들어간 서울역 앞 철도노동자들의 시위로 시작한다. 사회 각 분야에 일어나는 공공분야 개혁 담론이 민영화 시도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한국 고위 관료와 공무원들의 말을 듣고 영화 제작진은 세계 각국으로 카메라 여행을 떠난다. 영국, 아르헨티나, 칠레,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민영화를 둘러싼 반응은 한결같이 양극으로 나뉜다. 민간 대기업 관계자들은 민영화가 촉진시킨 발전을 강조하고 시민과 노동자들은 민영화로 인한 공공분야의 서비스 저하와 일상적 불편을 호소한다.

민영화 폐해로 가장 끔찍해진 곳은 아르헨티나다. 지하철, 전기, 수도 등 대다수 공공영역을 민영화한 이 나라는 승객들로 콩나물시루가 된 지하철 문을 닫지 않은 채 고속으로 운행하는 걸 일상적 풍경으로 접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에 민영화를 도입한 메넴 대통령 시절 그의 변호인으로 일한 리카르도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바로 비즈니스를 뜻합니다.” 피노체트 독재 시절 미국에서 유학한 시카고학파 관료들이 공공부문 민영화를 입안하고 실행에 옮긴 칠레에서도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거기서 교육제도 개혁 시위에 열심인 한 대학생은 한국 사람들에게 보내는 대자보에 이렇게 쓴다. “민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사회 불평등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서 대자보를 붙인 그 대학생도 네 시간이나 걸려 고향에 돌아가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지만 누구 편에도 기표하지 않은 채 백지로 냈다고 한다. 좌절하고 낙담하는 것보다 이제 바꾸기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절망이 더 무섭다.

이 영화는 꽤 선동적이며 지적이고 동시에 명쾌하다. 민영화로 인한 효율성 제고와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간단한 거래가 있다. 민영화 대가로 기업과 정치인들이 맺는 검은 거래가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더 단순 솔직한 견해도 있는데 프랑스 수도회사 수에즈의 전직 임원은 부패가 나쁜 것이 아니며 인간사에서 늘 있어 왔던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예를 들어 부패가 승할수록 발전 속도도 빠르다고 강변한다.

그런 와중에 화면 속에 비친 이 나라의 대통령은 프랑스에 가서 대한민국은 공공부문에서 프랑스 대기업을 맞을 모든 준비를 갖췄다고 따뜻한 연설을 한다. 우리에게도 재앙을 막을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이 영화 <블랙딜>은 무섭게 경고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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