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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컴퓨터 인공 인격과의 연애는 사랑일까

등록 2014-05-29 19:08수정 2015-10-28 16:11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를 보다가 잠깐 졸 뻔했다. 나는 로맨스 영화에는 좀 흥미가 없는 편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대필회사에서 일하는 작가인데 아내와는 이혼수속을 밟는 중이고 퇴근해서도 할 일 없는 외로운 남자다. 이런 설정은 흔하다. 테오도르가 새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깔고 사만사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 목소리의 프로그램과 연애를 할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갈망하는 남자와 그 남자를 위로해주는 목소리를 지닌 컴퓨터 프로그램 애인의 관계를 플라토닉 러브로 그려가는가 했는데 감독은 지속적으로 육체를 끌어들인다.

스칼릿 조핸슨이 목소리를 연기하는 사만사 프로그램은 완벽에 가까운 연애 상대다. 심지어 전화로 육체관계의 쾌감까지 나눌 수 있다. ‘그녀’로 추정되는 이 인공 인격체는 실제 인간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며 심지어 배려심도 깊다. 사만사 그녀는 유머와 지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음란한 상상을 거침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스칼릿 조핸슨의 달콤하고 걸진 목소리는 사만사 캐릭터에 굉장한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한마디로 이 로맨스 탐구 영화는 육욕을 끌어안고 있는 점에서 어른스럽다.

그보다 더 어른스러운 건 인공 인격을 지닌 대상인 그녀가 주체를 고민함으로써 사랑이라는 가장 고상하게 미화된 감정을 낱낱이 까발린다는 점이다. 테오도르는 그녀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 때문에 황홀한 느낌에 젖는다. 하지만 그녀가 자꾸 그녀에게는 없는 육체에 관해, 곧 스스로 육체적 주체가 될 수 없는 걸 고민하고 대상이 아니라 주체 대 주체로 만나는 걸 원할수록 곤혹감에 빠진다. 테오도르가 마침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려고 만난 아내와의 식사 자리에서 아내는 테오도르가 컴퓨터 인공 인격과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냉소한다. 아내는 당신의 틀에 맞는 상대를 원했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계와 사랑에 빠졌느냐고 테오도르를 비난한다.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사랑을 다룬 <그녀>는 곧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삶을 어떤 요란한 에스에프(SF) 영화보다 실감나게 그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입만 열면 타령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성숙한 관점을 제시한다. 달뜬 육욕과 낭만적 허영을 겉에 내걸고 엄마나 아빠의 무조건적 애정을 상대에게 바라는 대다수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일방이 아닌 쌍방의 사랑이 얼마나 단련된 인격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의 육체로 발딛고 서 있는 이 3차원의 공간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겸허하게 만드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영화 후반부에 사만사는 사라진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사람 같으면 죽었다고 해야겠지만 그녀는 다른 공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테오도르는 그 이별 이후 다른 사람이 된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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