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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3D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세 감독

등록 2014-05-15 19:18수정 2015-10-28 16:11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3D 영화 <신촌 좀비 만화>는 의미있는 모험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류승완, 한지승, 김태용이 각각 한 편씩 연출한 이 옴니버스 영화는 산업적으로 이제 대세가 된 3D 영화의 공간감각에 관해 이미 입지를 굳힌 세 중견 감독이 나름의 미학적 화두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가 흥미롭다.

기왕의 3D 영화 스타일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은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피크닉>이다. 이 옴니버스 영화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에피소드에서 김태용은 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귀찮아하는 어린 소녀의 일상을 소재 삼아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천연덕스러운 화술을 구사하는데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입체효과가 초현실 단락에서 징글맞게 잘 구현되었다. 천재소녀라고밖에 할 수 없는 김수안양이 맡은 여주인공의 일상을 3D로 서정을 담아 따뜻하게 쫓던 긴 호흡의 화면이 소녀가 남동생과 함께 떠난 이상한 소풍 여행에서 짧게 단속적으로 변하며 관객의 시·지각을 교란한다. 또 소녀의 철든 자각을 공감각적으로 일깨운다.

두번째 에피소드로 배치된 한지승의 <너를 봤어>는 가상의 미래가 배경인 좀비 멜로드라마인데 뮤지컬 코미디 요소도 적당히 섞어 놓았다. 관점에 따라 혼란스럽다고 불평할 이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 형식에 걸맞은 3D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3D 영화는 흔히 객석의 관객에게 확 다가오는 입체감과 놀람 효과를 강조하지만 이 영화에선 서서히 밀고 나가는 카메라 움직임이나 두 남녀 주인공 사이에 설정된 거리감이 효과적으로 느껴져서 접촉하고 싶지만 쉽게 접촉할 수 없는, 이미 좀비가 된 여주인공의 상실감이 과장 없이 묘사되는 감흥이 있었다. 예전부터 대작 스펙터클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멜로드라마에 적용되는 3D 영화 스타일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가능성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첫번째 에피소드로 배치된 류승완의 <유령>은 2D 일반화면으로 봤을 때 더 좋다는 평을 들은 모양이다. 전주영화제 개막작 기자시사 때 류승완 감독은 모든 게 완전 실패한 색보정 때문이라며 씩씩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카톡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한 여학생을 향한 짝사랑에 빠진 두 남학생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녀를 위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사건 실화에 기초한 이 영화에서 류승완은 3D에 대한 기성 접근법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화면 가득 떠 있는 주인공들의 카톡 문자들, 존재의 목소리를 표상하는 그 공허한 문자들과 소리들이 관객의 신경을 교란할 때 꽤 묵직한 사회비판적 시선을 감추고 있는 감독의 배짱을 느낄 수 있었다. 윤리적 안테나가 가동될 틈을 주지 않는, 중심이 없이 인터넷상에 붕 떠 있는 존재의 관계망을 나름의 스펙터클로 제시하는 가운데 류승완은 어떤 충격 효과도 쓰지 않고 3D 영화 스타일을 산만하지만 거센 십대들의 에너지로 포섭한다. <신촌 좀비 만화>는 3D 영화 형식의 잠재적 좌표로 충분히 음미할 만한 작품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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