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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물리적 현실 너머 세상의 다른 기운

등록 2014-04-03 19:46수정 2015-10-28 16:14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영화 <만신>을 보고 관심이 생겨 김금화 자서전 <만신 김금화>를 읽어보았다. 그가 살아온 내력은 파란만장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영화와 비교해보게 된다. 김금화의 삶에 관해서라면 영화 <만신>은 자세히 말해주는 편은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금화의 구술 인터뷰를 풍부하게 다루지 않는 대신 배우들이 출연한 극영화 형식으로 그걸 대치했다. 극화된 김금화의 삶은 전기적 사실을 세세하게 다루려 하기보다 박찬경 감독의 주제적 콘셉트로 특정인의 삶을 미학화하는 쪽에 가깝다. 특정인의 전기적 삶을 따라가면서 이처럼 대담한 형식을 드러낸 예가 또 있었나 싶다.

거기에는 장단점이 동시에 따른다. 문소리, 류현경, 김새론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만큼 만신 김금화 그 자신의 이면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아쉬움이 있다. 나는 특히 자료 영상을 통해 드러나는 만신 김금화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았다. 굿을 할 때 김금화는 어떤 배우보다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당 하면 떠올리는 작두를 타는 이미지 너머에 구경꾼들을 웃고 울리는 연기하는 사제로서의 그런 모습이 신기했다. 박찬경의 <만신>은 연기자로서의 김금화를 명제로만 제시하고 깊이 파고들진 않는다.

감독으로서의 박찬경의 야심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만신이 꾸는 꿈을 시각화하려는 종류의 쉽지 않은 시도를 한다. 영화 중반, 문소리가 연기하는 중년의 김금화는 꿈에서 한 중년 사내가 자살하는 광경을 본다. 꿈속에서 물가에 가서 죽으려는 그 남자와 마주치자 김금화는 서글프게 웃으며 따뜻하게 안아준다. 김금화의 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물가로 사라지고 김금화는 그를 찾아 나선다. 이 장면은 신을 통해 미래를 보는 김금화의 불가해한 능력을 형상화한 것이지만 김금화 그 자신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김금화라는 무당의 존재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선 지각하지 못하는 세상의 다른 기운과 모습을 스크린에 옮기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느껴질 뿐이다. 겉으로 근사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크게 와닿는 장면은 아니었다.

물리적 현실 너머의 것을 포착하려는 영화적 시도는 지금까지 많이 있었다. 우리가 보는 것만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것들, 대상을 둘러싼 공감각적 기운을 화면에 불러오려는 것은 영화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박찬경의 <만신>이 성취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영역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또한 원시적이어서 물리적 현실을 모방하고 꼼꼼하게 화면에 세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만신>은 그 점에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쪽에 가깝다. 물론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걸 껴안을 수는 없다. 나는 영화 <만신>을 봤고 그 덕분에 그의 자서전을 사서 읽었다.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을 읽고 만신 김금화의 삶뿐만 아니라 무속 그 자체에 대해서도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소명은 충족된 것일지 모르겠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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