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최근 기업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제와 소재 모두 정 반대편에 있는 영화들이다. 홍리경의 <탐욕의 제국>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다. 민환기의 <미스터 컴퍼니>는 돈의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고생하는 이야기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신들을 만나주지 않는 희생자 가족들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탐욕의 제국>이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 마모돼가는 기업 공동체 성원들의 불안과 피로를 담는 <미스터 컴퍼니>를 보고 있으면 만만하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요컨대, 흔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고난과 극복의 스토리로 구겨넣은 상투적인 위로가 이들 영화에는 없다.
그렇다고 기운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탐욕의 제국>에서 눈길을 끄는 건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고통이 일상화된 삶에서 백혈병 희생자나 그들의 가족이 보여주는 어떤 몸짓들이었다. 이를테면 살아있는 1년 남은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건 모두 가슴에 담겠다며 아픈 몸을 일으키는 이윤정씨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뭔가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극영화 <또 하나의 약속> 주인공 모델이기도 한 황상기씨는 투쟁이 일상화된 삶을 살아가는 평정심을 보여주는데, 자신을 가로막는 삼성 직원들 앞에서 느물느물 대꾸하기도 하며 세게 분노를 내지를 때도 스스로 다치지 않게 내뿜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았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힘센 기업의 가치를 자기 내부로 투사해 동일화하는 이 황량한 조건에서 그들이 소외에 맞서는 방법은 연대뿐이겠지만 그것 이전에 그들 내면의 단단한 돌멩이를 보는 건 관객으로 하여금 크게 심호흡을 하게 만든다.
민환기의 <미스터 컴퍼니>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이윤을 내야 존재할 수 있는 기업을 함께 꾸리며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 가치를 놓지 않을 수 있는가, 타협해야 한다면 어느 선에서 맞춰야 하는가를 놓고 영화 속 두 주인공 간부들은 쉴새없이 충돌한다.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대기업과 달리 의류업계 종사자들과 독립적 디자이너들에게 창의적인 삶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주겠다는 포부를 품지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직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관련 업체들에도 폐를 끼치는 상황에서 도대체 그놈의 이윤을 어떻게 벌고 배분할 수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대처방식으로 끝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밀고 나간다.
실제 우리 삶이 그렇듯이 말끔하게 종결지을 수 있는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그들 나름의 위엄과 용기를 볼 수 있었다. 때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때문에 피로해지고, 내가 어느새 비난받는 게으른 기성세대가 됐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 개인적으로 이 영화들을 보며 기운을 얻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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