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극장 개봉 뒤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아이피(IP)티브이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 <만찬>의 김동현 감독은 필자와 동년배다.
그와 안면을 튼 지는 꽤 오래됐는데 서로 호감은 있으나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다. 그가 좋은 인품의 소유자임을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다. 이 영화 <만찬>을 보면서도 그가 새삼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김동현은 쉽게 말해 뻥을 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뻥은 좋게 말하면 예술적 웅변과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영화는 늘 담백하다. 이게 상업성에는 독이겠지만 작품으로는 절절한 느낌을 준다.
<만찬>은 중년 가장 인철을 축으로 경제적으로 잘살지도, 아주 못살지도 않는 소시민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들은 다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생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는 아슬아슬한 상태에 처해 있다. 짐작하는 대로 그들 삶에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극적 톤과는 전혀 다르게 사건과 인물의 반응을 관찰하는 김동현의 연출자적 시선은 지긋하다. 그래도 이들이 나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후반부의 가족들 식사 장면에서 드러난다. 펑펑 눈물 흘리게 하는 그런 장면은 아니지만 오히려 기시감이 강하게 들 만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필자 같은 관객도 영화가 끝나고 다소 심란해졌다.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 모두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만찬>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외국의 유명 영화들, 이를테면 코언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나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극장에서 꽤 흥행하고 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 영화들과 <만찬>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만 나는 내 동년배 감독 김동현이 6년 만에 만든 신작이 조용히 잊혀져가는 게 가슴 아프다. 동시에 이 시대에 관객들과 더 넓게 소통하려면 한국 독립영화도 현실을 조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조망으로부터 더 센 에너지를 끌어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인사이드 르윈>의 주인공 르윈이 엉망진창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여주인공이 쓰디쓴 실연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찾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이런 것들을 줘야 하지 않나 싶다.
오해 마시기를. <만찬>은 좋은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들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점점 초라해지기만 한다. 그걸 세상 탓으로 돌리지도 않으며 나름 어른스럽게 견딘다.
그들의 선의, 그들 자신이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줄만 아는 그 선의의 태도가 영화를 보는 동안 가끔 나를 울컥하게 했다. 김동현 감독은 너무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끈질기게 그들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옆에 있어주려 애쓴다. 창작자로서 존경할 만한 태도지만 다음엔 살짝 뻥을 예술적으로 쳤으면 좋겠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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