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이장호 감독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인들 가운데 한 분이다. 그의 인간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만든 영화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한국에서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들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이 그렇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다른 어떤 영화와도 담을 친 채 홀로 거세게 내뿜는 기운이 그 영화에 있다. 2년 전에 그 영화를 다시 봤는데 여전히 닳지 않은 그 기운이 놀라웠다. 이건 이장호라는 용감하고 천재적인 숙주가 시대의 분위기에 맞서 만들어낸 기적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뜬금없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최근에 출간된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란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김홍준 감독이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며 대담한 것을 묶은 이 책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간 출간된 어떤 인터뷰집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알차다. 이장호라는 한 감독의 작품활동을 경유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아우르는 당대의 영화사 기록으로도 손색이 없다. 책에 실린 내용은 기왕에 필자가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모르는 것도 많았다. 이장호 감독은 듣는 사람이 당황할 만큼 솔직한 입담의 소유자인데 이 책에서 그가 털어놓은 한국 영화제작의 비화들은 웬만한 장편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이를테면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1974)으로 처음 데뷔할 때 여전히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 같은 기분으로 연출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신상옥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청년 이장호는 현장에서 감독이 연기 연출을 어떻게 하고 기술 스태프를 어떻게 지휘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기존 충무로 현장에 대한 그의 무지는 기존 충무로 영화에서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에너지로 승화된다. 대마초 파동으로 몇 년을 쉰 끝에 재기작으로 만든 <바람불어 좋은 날>을 찍을 때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반역의 기운 역시 남들이 해볼 생각도 없던 것들을 밀어붙인다. 연이은 흥행 실패로 사면초가에 몰린 그가 아예 망해버리자는 심정으로 자학에 가깝게 밀어붙인 <바보선언>(1983)이 1980년대에 미학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영화가 됐다는 역설은 기적에 가깝다.
이제 선배 영화인이 된 이장호 감독은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돌리는 겸손함을 보이지만 동시대에 오직 그 혼자만이 시대의 기운을 몸으로 버텨 이겨내며 다른 방향으로 풀어냈다는 건 경이적인 일이다. 옛날이 좋았다는 흔한 회고담이 아니라 요즘에는 가능하지 않은 특정 개인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이장호는 아직 산업이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굴러가지 않던 시절에 정치적 억압이 횡행하던 그 시절에 자기만의 기운으로 돌연변이에 가까운 특이체질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은 귀중한 한국 영화 자산이 됐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이런 분을 존경하지 않기란 어렵다. 영화인들의 일독을 권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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