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다음주에 개봉할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풍경>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담았다. 그들은 노동하고, 먹고, 각자의 종교에 따라 기도한다. 영화 속에서 대체로 그들은 말이 없고 카메라가 말을 걸어주면 속내를 드러낸다.
그들이라고 왜 말이 없을까만, 영화 제목처럼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풍경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게 된 사연은 많이 익숙하다. 우리의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가 했던 저임금 노동을 이젠 그들이 와서 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우리는 그들의 사연에 큰 관심이 없다.
내가 영화를 보다 슬쩍 놀랐던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 한 스리랑카 남자가 한국에서 15년 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장을 옮겨가며 일하던 그는 어느 날 공장을 그만둘 결심을 한다. 그날 밤 그는 다음날 사장에게 공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내용의 꿈을 거듭 다섯 번 꾼다. 적은 월급을 받으며 나름 열심히 일했는데 같은 직장 한국인 동료로부터 “넌 월급봉투 두개 받고 일하냐?”는 폭언을 듣는다. 억울하고 화가 난 그는 욕을 내뱉고 그 말을 들은 한국인 동료는 망치를 던지며 위협했다.
그다음 장면에서 놀랍게도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코끼리가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코끼리가 나뭇잎을 다 먹고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카메라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코끼리가 떠나가며 건드린 나무의 잎들이 살짝 흔들린다.
아마도 이 장면은 코끼리처럼 살고 싶은 그 스리랑카 남자의 내면에 숨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동물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세지만 풀만 뜯어먹고 사는 초식동물의 제왕으로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코끼리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 남자의 마음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들여다볼 여지가 많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의 내면을 유추하게 하는 화면들이 많다. 느슨하게 연결된 그들의 일상에서 혼자 밥을 먹고 정갈하게 치워진 어느 이주노동자의 깨끗한 식탁 화면이 보이면 우리는 타국에서 겪는 그의 고독을 짐작하게 된다. 동시에 먹고사는 것의 준엄함, 자기 혼자 먹고사는 것만이 아닌 가족과 친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그들의 노동에 따르는 삶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겉으론 매우 담담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어서 심지어 냉정한 관찰자로 비치는 카메라는 화면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 조금씩 우리의 입장을 그들에게로 옮겨놓는다.
그런데 대단원에 이르러 풍경의 이미지들은 더 건조하게 바뀌고 급기야 누군가의 시점으로 달리다 주저앉는 화면까지 나온다. 나는 장률 감독의 이 냉정한 논평이 가슴 아팠다. 누군가에게 섣불리 공감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고통까지 껴안으려는 마음이 직설로 뜨겁게 다가온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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