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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세 단편의 옴니버스, 가능성을 발산하다

등록 2013-11-14 20:10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다음주에 개봉할 <소설, 영화와 만나다>는 김영하의 단편소설들을 각색한 세 편의 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장편이다. 이상우의 <비상구>, 박진성·박진석 형제 감독의 <더 바디>, 이진우의 <번개와 춤을> 세 편은 다 색깔이 다르다. 대놓고 호객하는 듯해 민망하지만 필자가 프로그래머로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저예산 독립장편영화의 형편이 대개 비슷하지만 필자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많지 않은 돈으로 영화인들의 재능을 갈취하는 듯해 가슴이 아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수준이 좋아서 꽤 놀랐다. 한국 영화의 인적 인프라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고 이 작품이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계 인사들에게도 좀 널리 회자됐으면 하고 바란다. 묵히기엔 아까운 재능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중 <더 바디>를 만든 박진성·박진석 감독은 특히 왜 이 좋은 실력을 두고도 그들이 이렇게 초야에 묻혀 있는지 의아한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프리 프러덕션이 잘 풀리지 않는 영화감독이 크리스마스이브 야심한 시각에 소품 담당자의 집을 방문해 시체 인형을 살펴보는 에피소드와 바닷가에서 추위와 싸우며 영화를 찍는 촬영 현장의 풍경을 결합해놓았다. 엄혹한 노동조건에서 창작이란 걸 하는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낭만적 밤의 정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채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시체 인형의 가느다랗게 떠는 듯한 몸과 얼굴 근육의 경련을 통해 시적인 통증을 전해준다. 시적이라는 어마어마한 표현을 붙인 것은 이 영화의 카메라 워크가 매우 우아하기 때문이다. 이동촬영으로 느릿느릿 유영하는 카메라는 영화인들의 피곤한 삶의 공간에서 숨 쉴 곳을 찾아다니는 착각을 준다. 영화 말미에 누군가가 시체 인형에게 담요를 정성스레 덮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소통이라는 것이 말을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며 몸을 통해서도 이뤄진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웅변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소통부재의 현장에서 희미하게 이뤄지는 소통의 흔적을 증거하는 영화적 신체로 당당하게 기능하고 있다.

초저예산으로 단기간에 후딱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상우는 성과 폭력의 묘사 레벨을 가능한 한 높여 스캔들을 일으키는 감독으로 독립영화계에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영화 <비상구>는 그가 소위 ‘미친놈’ 계열의 예술가로서 상당한 진정성을 가진 감독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가 더 좋은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다면 아마 그의 스승 김기덕과는 다른 세계를 일궈낼 것이다. <8월의 일요일>이라는 적요한 예술영화로 데뷔했던 이진우는 <번개와 춤을>에서 블랙코미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소설, 영화와 만나다>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이 영화를 통해 그는 관객들에게 아부하지 않는 해피엔딩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마 자신의 숨겨진 재능에 가장 먼저 놀란 이는 이진우 그 자신일 것이다. 이 감독들과 이들을 지원해준 김서형, 최원영, 신동미 등의 배우들에게 영화계가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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