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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포섭되지 않고 불안을 견딘다는 것

등록 2013-07-25 19:57수정 2013-07-25 20:57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마스터

가끔 평자보다 젊은 감독에게 질투와 경외감을 동시에 느낄 때가 있다. 한국에선 봉준호, 외국 감독들 중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런 심사에 빠져든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를 보는데 현기증이 들었다. 과시적이지만 압도적이고, 불친절하지만 강렬한 이 영화의 화면을 보며 미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드는 이 내공의 소유자는 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리더로 삼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건 리더와 추종자의 관계, 나아가 그들이 맺고 있는 유사 부자지간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동경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유약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그런데 불안에의 응시라고 할까, 그 부정적 낙관의 기운이 거꾸로 나의 마음에 슬픈 긍정의 인상을 심어놓았다. 이건 굉장한 인간 이해라고 생각한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프레디는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해군갑판병인 그는 해변가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다른 병사들 사이에서도 금방 눈에 띄는데 특히 술에 취해 배 선미에 올라가 있는 그를 향해 갑판 아래 있는 동료 병사들이 먹을 것 따위를 집어던지며 야유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그는 불안한 정신병자지만 부감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카메라는 그를 흡사 거룩한 순교자처럼 보이게 찍어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랑하던 그가 우연처럼 ‘코즈’라는 사이비 종교를 창시한 지도자 랭카스터를 만난 건 노아의 방주처럼 자신의 신도들을 이끌고 요트 여행을 하던 랭카스터의 배에 오르면서부터였다. 랭카스터는 프레디의 밀주 만드는 법에 감탄하고 프레디는 일종의 최면요법처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안내하는 랑카스터의 ‘프로세싱’ 치료요법에 끌린다.

<마스터>는 프레디가 랭카스터에 감응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랭카스터가 프레디에 감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요컨대 랭카스터는 프레디를 개종시키는 데 실패한다. 프레디는 랭카스터의 감화에 근원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가 너무 이상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비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불안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어떤 거대 가치체계로도 포섭될 수 없는 진실한 영혼을 지녔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으며 고모와 근친상간을 했고 참전경험으로 완전히 망가진 그의 마음은 회복될 수 없다. 그는 어른이 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도 도망친다. 그는 영원이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 랭카스터에게는 엄격한 아내, 어머니처럼 보이는 무서운 아내가 있다. 위대한 지도자처럼 구는 랭카스터 역시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무서운 아내/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랭카스터는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나는 프레디를 심지어 동경하는 듯이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재회한 자리에서 랭카스터는 마스터가 필요없는 프레디의 삶에 덕담을 건넨다. 필자는 이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미친놈으로 살더라도 불안을 견디는 것, 대담한 결말이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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