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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에 슬픈 감정이입

등록 2013-07-04 19:48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코스모폴리스>는 크로넨버그의 영화팬들에게는 좀 색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크로넨버그는 종종 인간의 몸이 기계와 섞이는 모티브로 공포영화를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물리적 폭력의 극단을 묘사하면서 인간다움의 정체를 과격하게 묻곤 했다. 이 영화, <코스모폴리스>는 반대로 아주 얌전하다. 주인공인 억만장자 에릭 패커가 대다수 회사업무를 리무진 안에서 보는데 카메라는 좀처럼 차 안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 바깥 뉴욕 거리에선 금융 자본주의를 규탄하는 시위가 한창이지만 에릭 패커는 천문학적인 자기 돈을 관리하느라 부하 직원이나 전문가들을 차 안으로 불러 추상적인 대화만 나눈다.

영화 중반에 나오는 한 장면. 에릭 패커는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로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어 파산 직전이고 시위대가 점령한 바깥 공기는 심상치 않은데 길가 광고판에는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문구가 뜬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여는 유명한 문장을 차용한 이 문구는 묘하게도 에릭 패커를 연기하는 로버트 패틴슨의 외모와 잘 어울린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미국 십대의 아이돌이 된 이 배우는 흡혈귀나 유령에 어울리는 창백한 미모의 소유자다. 그는 영화 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처럼 보인다. 엄청난 부자지만 그가 직접 돈을 쓸 일은 없고 모니터에 나오는 그래프의 궤적만이 그의 자본 보유 현황을 알려줄 뿐이며 결혼한 지 20일밖에 되지 않은 아내와는 어쩌다 길에서 만나는 사이다. 그는 세상을 경험하고 감각한다기보다는 구경할 뿐이다.

그래프 위에서 노는 삶,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공식으로 돈을 조율하는 삶, 그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의 현재이고 그런 자본주의적 삶의 맨 꼭대기에 자리한 에릭 패커는 유령 같은 생활을 한다. 영화가 끝나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돈 드릴로의 소설을 굳이 이런 방식으로 영화화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기계와 섞이고 사지절단되는 육체를 스크린에 전시하면서 우리가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를 괴이하게 해부하고 질문했던 감독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기고만장한 신자유주의의 깃발로 세계를 접수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인간들은 더욱 괴물이 되었다. <코스모폴리스>의 주인공 에릭 패커는 그런 시대의 수혜자이자 동시에 희생자다. 구경하는 삶에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뭔가를 감각하고 싶어하는 듯이 보인다. 그가 유일하게 느끼는 건 무미건조한 섹스뿐이다. 결국 그는 경호원을 총으로 쏴 죽이고 나중에는 자기 손가락을 총으로 쏘며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불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현대판 오디세이 여정이라고 할 이 영화의 결말로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난뱅이인 필자도 괜히 그의 운명에 감정이입해버리고 말았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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