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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길 위에서’ 찾은 내 눈물의 이유

등록 2013-05-23 19:56수정 2013-05-23 21:07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생활을 담은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보는데 자주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혹시 나에게 출가의 디엔에이(DNA)가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졌다. 농담이고, 필자는 5년째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있다. 남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인가 곧잘 묻는다. 태어나서 절에는 다섯번도 안 가본 필자가 이 운동을 하는 건, 하고 나면 심신이 개운하기 그지없는 이 운동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길 위에서>에 등장하는 스님들이 고된 수행자의 길을 택한 이유를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나를 찾기 위해서라거나 삶이 혼란스러워서, 이 길을 택하는 게 편안해서라고 그들은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말한다. 딸의 출가 결정으로 청천벽력을 맞은 그들의 부모는 절에 찾아와서 눈물로 당사자와 주지 스님에게 하소연하는데,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을 만큼 절실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말은 명료하지 않았다.

영화의 처음, 비구니들의 삶을 찍으려는 이창재 감독에게 백흥암 주지 스님이 뭘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는 감독 자신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질문은 다시 환기된다. 감독의 대답도 명료하지 않다. 그도 영화 속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그 역시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수행자의 삶에 매혹된 게 있을 것이다. 말로 문답이 가능하지 않은 이 상황을 그는 <길 위에서>를 통해 수려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데뷔작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창재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비범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단아하고 아름답고 흐트러지지 않는 화면들이 스님들의 고된 수행생활을 담아낼 때 거기엔 미적 수식 외에 다른 느낌들이 배어나온다. 절에서의 수행은 부처님께 절하고 일하고 참선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에서도 먹고 자고 싸는 일상이 있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한다. 오랜 수도생활을 한 끝에 덕망을 얻은 백흥암의 한 스님이 영화 속에서 이런 말을 한다. 매일 화두를 붙잡고 있지만 화두와 한 몸이 되는 건 쉽지 않다고, 밥값을 해야 하는데 밥값을 하지 못하면 괴롭다고, 예전의 어느 큰스님이 밥 한 그릇은 피 한 그릇과 똑같다고 말한 걸 회고하며 그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세속의 삶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이 있는 절에서의 일상을 찍으면서 표면에 흐르는 감정의 주름 이면에 있는 고통을 바라본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며 고통을 초월하기 위해 산다. 필자가 왜 곧잘 눈물을 흘렸는가를 생각해봤더니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복을 찾는다. 행복을 얻기 위해 따르는 대가는 가급적 치르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온갖 성공했다고 뻐기는 세상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대가를 치르면 행복도 얻게 된다고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꾸짖지만 <길 위에서>의 수행자들은 그 틀을 아예 벗어나 있다. 행복도 고통도 없는 경계 너머의 삶에 자리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맨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오래전에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흥을 <길 위에서>를 보며 다시 느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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