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강우석 감독이 한때 영화주간지 <씨네21>의 ‘영화계 파워 50인’ 설문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던 시절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그가 운영하는 영화사 시네마서비스에서 프리머스 극장 체인을 설립할 때 그는 특히 패권주의자라는 악명을 들었다. 강우석은 늘 자신만만했고 외부인들에게는 그런 그의 모습이 오만하게 비쳤다. <씨네21> 기자 시절 필자는 강우석에게 닌자 같은 존재였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필자는 그가 보이는데 그는 필자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강우석의 영화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유머가 있지만…’, ‘대중성은 있지만…’이란 쪽이었다. <공공의 적>을 보고 마침내 강우석의 영화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도 나를 눈에 보이는 평자로 받아들였다. <한반도> 개봉 때 그에게 언짢은 비판을 했지만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직 대기업이 촬영현장의 숟가락 하나까지 재지 않던 시절, 강우석의 투자자로서의 면모는 호탕한 바가 있었다. 1000만명 흥행작 <왕의 남자>나 칸 영화제 수상작 <취화선>도 남들 눈에 무모해 보이는 그의 투자 결단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석에선 그가 알리지 않았던 미담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강우석이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는 이장호 감독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을 때 아예 강우석의 이름을 대고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전용식당이 있었고, 급전이 필요할 때 강우석에게 ‘SOS’를 치면 군말 없이 목돈이 입금됐다고 말했다. 신상옥 감독이 돌아가셨을 때 아무도 모르게 거액의 장례비용을 쾌척한 일화도 있다. 지금은 잘나가는 한 제작자는 연이은 흥행실패로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강우석 감독이 주식을 주면서 잘 갖고 있다가 아이들 교육비로 쓰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인간적 의리를 중시하는 이런 면모 때문에 2000년대 중반 한때 국내 최고의 투자배급사였던 시네마서비스 사세가 줄어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시절 사석에서 강우석 감독을 만나면 집요하게 연출에만 집중하라고 돼먹지 않은 충고를 하곤 했다. 강우석의 영화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는 일은 없겠지만 그의 영화는 충무로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한국적 정서로 최적화된 대중영화의 수준을 대표한다. 꽤 묵직한 권력 우화의 메시지를 담았던 <이끼>가 성공했는데도 그는 시각적 스타일보다 드라마의 결을 중시하는 자기 연출의 본령을 놓치는 게 아닌가 불안해했다. 필자 같은 먹물 주변인들이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되라고 부추겨도 그는 굳이 작가가 되려는 의식적인 야심을 경계한다.
<전설의 주먹>을 보며 강우석의 영화세계가 변하지 않고 깊어질 것이라고 새삼 확인했다. 그는 수심을 재는 나비처럼 대중의 눈높이를 잰다. 적당히 수위를 지키면서 동시대의 정서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깊이를 만든다. 대중영화로는 비교적 부담스러운 153분의 상영시간인데도 호흡은 빠르고 컷수도 많아졌다. 강우석 스타일이 변한 건가 의아해하는 순간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의 농도가 진해져서 살짝 감동하게 된다. 그는 폭력을 전시하지만 사춘기의 폭력과 중년기의 폭력이 교차하는 영화의 드라마에 이 사회의 축도를 병풍처럼 그려 넣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나는 끝까지 강우석의 영화를 응원할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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