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제로 다크 서티>
<제로 다크 서티>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는 늘 필자 취향과 어긋난다. 올해 아카데미 후보작에 오른 영화 중 필자의 관심을 가장 끈 영화는 캐스린 비글로(62)의 <제로 다크 서티>였다.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의 노력을 그린 영화인데, 수상 결과는 음향편집상을 받는 데 그쳤다. 7일 국내 개봉하는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 자장에서 멀리 떨어진 고유성이 돋보인다. 캐스린 비글로의 개인적 취향이 공세적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관객의 몰입감을 압도적으로 끌어내는 작품이어서 좀 과장하자면 비글로가 만년에 개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앞으로 거장의 행보를 이어갈 것이란 예감을 준다.
캐스린 비글로의 전작이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허트 로커>(2008)는 전쟁영화의 묘사 패러다임을 바꾼 야심작이었다. 그 영화는 자기 일에 중독된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폭발물 제거반 병사들의 행위를 집요하게 담는다. 그들은 중무장 복장으로 언제 어디서 폭발물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지역에서 시청각 감각이 제한된 상태에서 수행하는 위험한 임무를 두려워하면서도 거기 길들여져 있다. 그들은 도구화된 자신들의 몸이 느끼는 반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반전 메시지도 표방하지 않지만 여타 전쟁영화의 피상적인 휴머니즘 따위는 한 방에 보내버리는 강력한 반전 메시지가 있었다. 초점은 좀 다르지만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전문가들의 직업적 삶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캐스린 비글로의 연출은 숨막힐 듯 관객을 몰아붙이다가 후반부에 커다란 감정의 해일이 몰려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의 정보국 요원들은 첨단 전자장비를 활용해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는 정보전을 벌이지만 그들의 처지는 중화기로 무장했어도 어린애처럼 위험에 노출된 <허트 로커>에서의 폭발물 제거반 군인들과 똑같다. 그들의 신원과 위치는 적에게 훤히 노출돼 있다.
‘제로 다크 서티’는 새벽 0시30분을 가리키는 군사용어로 아군이나 적군 모두 서로 전혀 볼 수 없는 완전한 암흑의 시간을 말한다. 작전을 수행하기 좋은 시간이지만 위험도는 아군이나 적군에게나 똑같이 높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마침내 정보국 요원들이 알아낸 빈라덴의 은신처를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기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작전 수행 시간대가 바로 제로 다크 서티 시간대다. 군인들이 부착하는 야간투시경의 시점을 따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전개되는 이 작전을 묘사하는 화면에는 종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모든 것이 슬픈 비극의 한 끝자락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임무 수행에 성공한 정보국 요원 주인공과 용맹스런 군인들도 어딘가 모를 허무감에 젖는다. 전쟁이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조차도 구경거리로 소비하고 있는 이 비윤리적 시대에 들이대는 캐스린 비글로의 사실적 묘사는 어떤 선동적인 정치가의 연설보다 서늘하고 압도적이다. 안 보시면 여러분만 손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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