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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세상의 모습 조롱한 앤더슨 감독

등록 2013-02-17 20:00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아마 그의 영화에 감도는 대책 없는 유년기 정서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웨스 앤더슨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을 극장에서 보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이 사람만큼 별난 개성의 소유자도 드물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웨스 앤더슨의 이전 영화들이 애들 같은 어른들의 난장 소동극을 그렸다면 이 영화에선 어른처럼 조숙한 사춘기 아이들의 일상 탈출극을 담는다. 위탁가정에서 자란 고아 샘이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탈출해 부유한 변호사 부부의 딸 수지와 달빛 교교히 흐르는 섬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결혼도 하기로 하는 깜찍한 내용인데 시종일관 영화적 활력이 넘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활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보이스카우트 캠프가 차려진 숲에서 보이스카우트 대장이 자기 텐트에서 나와 하루 일과를 점검하며 돌아다닐 때 카메라 움직임이 재미있다. 카메라는 마치 장군이 군대 연병장을 사열하듯이 위풍당당 보이스카우트 대장을 이동촬영으로 따라다닌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명한 반전 영화 <영광의 길>에 이것과 비슷한 카메라 이동이 있다. 장군이 참호 속의 병사들을 시찰하다가 겁에 질려 미쳐버린 어느 병사를 야단칠 때 우아하게 장군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는 진짜 미친 건 병사가 아니라 장군임을 시각적으로 꾸며 조소한다. <문라이즈 킹덤>에선 사이코패스 연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에드워드 노턴이 보이스카우트 대장으로 나오는데 <영광의 길>을 인용한 듯한 카메라 움직임이 관객의 선입견과 달리 선량하기 그지없는 캐릭터인 이 대장의 내적 활기를 칭송하는 듯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문라이즈 킹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어른인 척하는 아이들이나 아이들 못지않게 철이 덜 든 어른들은 이 세상의 인습 규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웨스 앤더슨도 이제 중년의 감독인데 이처럼 철없이 구는 인간들을 그린다는 게 놀랍다. 영화 초반 카메라가 비춰주던, 사람들이 잘 가꾸어놓은 섬 곳곳 모습은 후반부에 거센 폭풍우가 몰려와 초토화된 섬의 풍경과 대비된다. 이걸 통해 자연의 야성과 달리 인간의 삶은 너무 멀리 본성에서 떨어진 규칙들을 세워놓고 거기 갇혀 낑낑거리는 것은 아닌지 감독은 은근히 조롱한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이 각 악기 파트의 개성이 살아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도 개별성이 보장될 때 조화로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내 아이들만 해도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휘말려 남들 다니는 학원에 다닌다. 함께 사는 ‘사모님’과 아무리 언쟁을 벌여도 소용없다. 여주인공 수지 역의 캐라 헤이워드라는 소녀가 내뿜는 기묘하게 성숙하고 세게 느껴지는 눈동자의 기운을 보면서 마구 날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실은 어른들의 선생은 아닐까 뜬금없이 생각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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