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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류승완 감독! 영화하지 말라는 말 미안했소

등록 2013-01-27 19:47수정 2013-01-28 09:28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1998년 무렵 나는 대학로 한 극장에서 주최한 강연회가 끝나고 조언을 청하는 젊은 남녀를 강연장 입구에서 만났다. 그들은 내게 영화를 하고 싶은데 충고를 구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웬만하면 영화 하지 마시라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들은 내 무례한 답을 듣고 이를 갈았다. 언젠가 당신이 보고 흥분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 복수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연인 사이였던 그들은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으며 영화도 함께 만들었다. 남자는 감독, 여자는 제작자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류승완, 그 여자의 이름은 강혜정이다. 솔직히 말해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재생한 기억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주먹이 운다>를 개봉할 무렵 류승완 감독은 내게 그때를 기억하시느냐고 물었다. 내가 심한 말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포기할 리도 없었지만 여하튼 나는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미래에 찬물을 끼얹었던 셈이다.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류승완은 ‘액션 키드’로 불리었으며, 한때 그 별명을 즐겼다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 류승완은 <다찌마와리> 이후 액션 키드의 세계와 결별하겠다고 곧잘 사석에서 천명하곤 했다. 그는 어른의 영화를 찍고 싶어했다. 세계의 부조리를 향한 대결의식과 영화 장르의 관습을 희롱하는 유희정신의 충돌은 류승완 영화의 표지이지만 그 양자가 비로소 균형을 잡고 일취월장 실력을 보여준 것은 <부당거래>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류승완의 영화세계가 오래 갈 것이라는 기왕의 믿음을 재확인했다. 그는 족보도 계통도 없이 오로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독학해서 일가를 이룬 감독이다. 마흔 줄을 넘긴 그가 아직도 젊어 보이는 것은 이런 단독자 기질 덕이라고 생각한다.

스파이 장르 서사와 액션 영화의 문법을 결합한 신작 <베를린>은 액션 키드 류승완이 성숙한 장인 감독 류승완과 여전히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과 달리 치기가 없고 오래 준비한 전문가의 능숙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오랜 파트너인 무술 감독 정두홍과 류승완의 연출 호흡은 보고 있으면 관객의 몸까지 덩달아 아파오는 아날로그 액션의 에너지를 스크린에 새겨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이 영화가 걸작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기가 막힌 활극과 드라마의 유장한 호흡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경지에 류승완 감독의 연출이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전지현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독보적이다.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는데도’ 동시에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오래 전 내가 허투르게 봤던 류승완의 재능에 대한 예측은 틀렸다. 이 지면을 빌려 심심한 사과를 전하는 바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관련영상] 류승완 감독 “전지현 외롭게 만들라고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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