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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다르지만 같이 살기’ 3D가 준 뜻밖의 성찰

등록 2013-01-13 20:04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라이프 오브 파이
입체영상(3D)이 영화의 미래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때에도 필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과 기술의 결탁에 따른 스펙터클 구경거리에서 어떻게 3디가 진화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지난해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휴고>를 보며 내 편견을 반성했다. 영화의 ‘선사시대’에 환상적인 모험영화를 만들었던 조르주 멜리에스의 전기를 다룬 <휴고>는 원래 영화문법은 요즘의 스타카토 리듬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화면의 전경과 중경과 후경에 고루 인물과 사물을 배치해 연극적 호흡으로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영화언어의 시대가 있었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3디 연출은 영화의 선사시대에 통했던 문법이 현대에도 가능할 것이란 믿음을 줬다.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227일 동안 망망대해 바다에서 벵골호랑이와 함께 표류하는 인도 소년의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는 놀랍게도 3디 방식이다. 호랑이의 거칠고 드센 움직임을 화면에 포착한 것도 신기한데 그게 3디로 재현돼도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압도적인 감흥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3디 기술이 신기한 볼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주인공 ‘파이’와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이 붙은 벵골호랑이는 영화 내내 결코 같은 면에 수평적으로 위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다른 면에 위치한다. 파이는 자신이 호랑이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갖은 기지를 짜내서 호랑이가 죽지 않도록 도와준다. 자신은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 보트에 밧줄을 달아 바나나로 만든 임시 구명보트에서 연명하면서 말이다. 영화 속에서 파이가 회상하듯이 파이는 호랑이라는 무서운 동반자가 없었다면 그 자신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섞이지 않고 개별자로 살면서 공존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스토리는 <정글북>과 같은 전통적인 제국주의 담론과는 판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친구가 된다는 미명 하에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정복하고 소유했다. 그게 인간의 문명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간의 삶에 시련을 주는 신의 섭리를 비롯해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온갖 설명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 기존 관념을 버리고 새로 볼 것을 웅장한 시각적 테마로 들이댄다. 어떤 구구절절한 논리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감각으로 접수되기 때문에 저항할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벵골호랑이와 친구가 되려 했으나 되지 못한 주인공 파이의 슬픔에 대해 시종일관 무심했던 벵골호랑이의 눈빛과 자태가 기억에 남는다. 호랑이는 인간적 감정의 범주로 대하고 묶기에는 다른 존재였다. 그는 파이와 하나가 될 수 없었지만 파이와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동물이었다. 파이와 호랑이는 같은 면에 서지 않고도 각자 다른 면에서 공존할 수 있었다. 섣불리 관념을 내세우지 말고 겸손하게 살자는 다짐을 이 영화를 보며 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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