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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거세당한 조성희 감독의 ‘야성’

등록 2012-12-16 20:03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늑대소년
뒤늦게 <늑대소년>을 봤다. 조성희 감독의 전작들을 유심히 봤던 터라 단편 <남매의 집>이나 저예산 장편 <짐승의 끝>과 달리 이 영화에선 조성희 감독의 색깔이 덜 보인다는 주변 평판에 신경이 쓰였다. 실제로 그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전 영화들은 낯선 것을 낯선 것 그대로 두고 보려는 데서 기이한 판타지의 에너지가 나온다. <남매의 집>에서 부모 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남매의 집에 찾아오는 괴한들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그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 무지에서 오는 공포감은 어마어마하다. <짐승의 끝>에서 박해일이 분한 절대자는 끝내 그 존재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현실의 논리를 초월한 존재, 그러나 그 존재가 착한 편이 아닌 듯한 불안감이 이 영화들이 주는 공포의 핵심이다.

<늑대소년>은 그렇지 않았다. 송중기가 분한 늑대소년은 알고 보면 절대적 선의 현현이다. 강한 이빨과 발톱과 코끼리 못지않은 세포조직을 지닌 이 소년이 한 여자를 위해 무조건 헌신한다. 6·25 전쟁 때 군사 목적으로 실험된 유전자 조작의 희생자라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내력이 아니라 존재의 쓰임이다. 어떤 역사적 정황의 희생자이자 정상적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추방자로서 공감을 요하는 존재지만 그 쓰임은 여하튼 주인공 순이의 영원한 보호자이자 친구이자 연인의 역할에 한정된다. 나는 영화를 보며 약간은 기가 막혔다. 이 대책 없는 판타지의 매력은 무엇인지, 객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 사이에서 홀로 어리둥절했다. 공포영화의 괴물과 같은 존재에게서 우리 내부로부터 추방시킨 타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창작 판본이다. 이 경우에는 그 타자에게서 영원한 연인의 이미지를 끌어낸다는 게 특이하다. 잘생기고 강한 송중기라는 배우의 육체적 매력을 통해 제시된 영원한 연인의 환상, 이게 그토록 강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판타지를 즐기는 사람들을 욕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늑대소년>의 대중적 매력의 알맹이는 좀 앙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브라우니’가 생명을 얻어 몇십 배 업그레이드된 형상으로서의 늑대소년은 현실과 역사를 초월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일종의 애인 펫 놀이를 이야기화한 듯한 착각마저 준다. 영화 속에서 야성만 있던 늑대소년 철수가 조금씩 여주인공 순이의 감화를 받아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양순해지는 것과 같이 감독 조성희의 야성은 이 첫 상업영화를 통해 당황스러울 만큼 거세당했다. 괴물을 괴물로서 보는 것, 판단하지 않고 그냥 그 괴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조성희의 야성의 매력이었다. 괴물을 괴물로 대한다는 시각에서 근본적으로는 괴물이라는 타자를 끌어안을 수 있는 관용이 나온다. 한국적 판타지의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 조성희의 야성이 이렇게 말랑말랑해진 것에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일단 흥행감독이 된 걸 축하하지만 다음 영화에선 다른 걸 기대하고 싶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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