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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직은 감독보다 작가가 더 어울리는…

등록 2012-11-04 20:01수정 2012-11-05 09:26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의 육상효 감독은 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1990년대 초반 처음 그를 만났는데 어찌나 입담이 좋던지 말로 푸는 모든 게 그냥 소설이거나 콩트였다. 그가 장차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포부를 밝혔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는 진짜로 영화감독이 됐다. 대학에서 스토리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그는 시나리오를 참 잘 쓴다. 육상효가 직접 쓴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모 기관에서 주최한 공모 심사를 하느라 읽어본 적이 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린 끝에 도대체 이런 이야기의 밀도를 화면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의심했던 생각이 난다.

추측건대 <강철대오>도 완성된 영화보다 시나리오가 훨씬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시나리오를 잘 쓰는 일류 작가라는 칭찬도 되지만 그가 아직 각본을 시각화하는 영화감독으로선 미숙하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오십을 바라보는 그가 감독으로서 미흡하다고 하는 건 실례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강철대오>는 1980년대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을 소재로 삼아 운동권 대학생들 틈에 끼어든 중국음식점 배달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담한 상상으로 구획된 이야기의 틀은 구미를 당기지만 철가방 배달원과 여대생의 사랑이야기를 신파로 풀어낸 멜로드라마와 예기치 않은 상황의 연속으로 꾸며진 코미디와 제5공화국의 시대상을 원거리에서 조감하는 성찰적 시선이 정리되지 않은 채 펼쳐진다.

육상효의 코미디가 매력적인 것은 도무지 껴안을 수 없는 것들도 껴안으려는 그의 선한 포용력이 화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당대의 시대정신에 따라 열정을 불사른 운동권 대학생들의 태도를 진심으로 긍정하면서도 전민투, 삼민투 따위의 용어 뜻으로 우리 편과 상대 편을 분간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희화화한다. 그 당시에는 진심이었겠지만, 나중엔 철 지난 열정이거나 출세의 방편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었던 운동권 학생들의 타락의 조짐들도 일정하게 건드린다. 그게 날이 서 있거나 벼린 비판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인간사에 대한 그의 넉넉한 관점 덕분이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 아닌가’라는 편이고, ‘다 그런 거 아니겠나’라고 인정하고 돌아서는 주의다. 그때의 진심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의 진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철대오>는 보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영화는 아니며 얼마간 웃기고 얼마간 슬프게 만드는 영화다.

딱 하나, 감독이 힘을 주어 말하고 싶었던 대목이라고 느껴지는 건 클라이맥스다. 제목 그대로 구국의 철가방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거기 힘이 실리지 않은 건 아쉽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영화는 멜로와 코미디와 시대풍자가 톱니바퀴 리듬으로 충돌해서 하나로 감정이 모이질 않는다. 육상효의 입담과 선의는 아직 시각적 화면 통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평소 그의 성품으로 보건대 그는 현장에서 뭔가를 악착같이 뽑아내는 감독이기보다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두루 배려하며 영화를 찍는 동안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유형의 감독일 것이고 이는 어쨌거나 예산이 부족한 형편에서 만드는 영화의 연출자로선 부적격 사유일 수 있다. 이런 것까지 짐작하며 쓰는 평론이 편파적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육상효 감독의 이야기꾼 재능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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