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각하’의 연기는 위대했다

등록 2012-10-21 19:57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MB의 추억'
이명박 정부 5년을 결산하는 풍자 다큐멘터리 <엠비(MB)의 추억>은 예고편 분위기와 달리 마냥 코미디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트루맛 쇼>로 작은 화제를 일으킨 김재환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5년 전 대선 유세 때의 기록필름을 창조적으로 재편집해 우리 안의 이명박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엠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역시 우리 각하가 위대하다는 점이었다. 이분은 당시 대선 후보 중에 유일하게 대통령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연기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연기에 존경을 바치려면 국내 영화제로는 감당이 안 된다. 이 영화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추천해 한국 영화계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노려볼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한 번도 거리 유세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자신만만한 언설이 신기했다. 적당히 반말 섞은 농담을 편하게 구사하는 그의 화법은 친서민적이고 호소력이 있었다.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 등 도우미로 나선 인사들의 찬조연설도 쉽고 선동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은 카멜레온 같은 연기자였다. 포커페이스로 대충 하는 듯이 굴지만 실은 연출자가 원하는 연기를 자유자재로 해낸다. 국밥집 아줌마 시에프(CF)를 찍을 당시 메이킹 필름이 나오는데, 엠비의 연기에 탄복한 시에프 감독의 감탄사가 화면 밖에서 연신 들린다. 그에 반해 당시 야당 후보였던 정동영과 이회창 후보는 경직돼 있고 쇼맨십이 약하다. 시장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를 즉석에서 두 그릇 뚝딱 해치우며 ‘좋다’를 연발하는 이명박 후보에 비해 정동영 후보는 시장 상인들이 이곳저곳에서 먹여주는 김밥·순대·족발 등이 입안에 들어올 때마다 쩔쩔매며 괴로워한다.

<엠비의 추억>에서 그나마 느긋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은 다른 매체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엠비의 막간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전방 모 군부대를 방문한 이명박 후보가 식당에서 배식 받은 밥을 열심히 먹는 장면이 있다. 사병들이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듯, 후보를 위해 군가를 불러드리겠다고 하는데도 그는 밥 먹는 데만 관심이 있다. 주변 사람들 누구도 그에게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을 때 군가는 시작된다. 그제야 눈치를 챈 엠비가 급히 기립해 입안의 밥을 오물거리며 병사들의 군가 합창을 듣는다. 너무 많이 입에 담아 두었는지 그의 오물거림은 계속된다. 텔레비전 뉴스 단신 화면으로 스쳐지나갔을 이 장면에서 건져낸 그 귀중한 순간을 보며 우리는 그의 행동이 참 저렴한 처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해봤다며 그가 직접 용감하게 풀빵을 구워 시장의 구경꾼들에게 파는 쇼를 연출할 때도 카메라가 비춰 보여주는 풀빵들은 모양도 형편없고 채 익지도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엠비는 자신만만하다.

엠비의 연기력에 찬탄한 것은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 실수는, 아니 자발적인 찬탄과 동조는 계속되고 있다. <엠비의 추억>의 후반부는 남쪽 지방에 사는 진짜 서민들이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엠비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기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자연인으로서의 엠비는 쇠했을지 몰라도 연기자로서의 엠비는 영원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괴벨스의 명언에 빗대어 말하자면 그가 우리에게 군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연기자이기 때문에.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김지태, 부정축재 처벌피하려 부일장학회 헌납…강압아냐”
진중권, 박근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은 “대국민 선전포고”
‘4대강사업’ 금강 벽제보 인근서 물고기 ‘떼죽음’
지자체 욕망의 불꽃이 남긴 잿더미
각자의 체취는 어디서 나는 건가요?
전국 교통혼잡 지역에 우회도로 생긴다
똥을 흙에 파묻는 고양이, 깔끔해서 그럴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1.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2.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신라 맹꽁이의 1300년 전 미소를 보라..설연휴 박물관 나들이 전시 3.

신라 맹꽁이의 1300년 전 미소를 보라..설연휴 박물관 나들이 전시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4.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아내를 물건 취급해온 역사, 동서양 다를 바 없었다 5.

아내를 물건 취급해온 역사, 동서양 다를 바 없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