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공적자금으로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확대를

등록 2012-09-16 20:06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피에타’ 이후

지난 일주일간 한국 영화계는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로 들썩거렸다. 이럴 때 언론의 반응을 보면 좀 신기하다. 일부 언론은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듯하다. 김기덕 감독이 ‘한국에선 루저, 외국에선 위너’가 됐다는 식의 기사 논조는 목적 지향적 선동의 대표적 사례다. 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서 부당한 비평적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영화잡지는 늘 상당한 분량의 특집기사를 할애했다. 찬반양론이 격렬했지만 그건 비평적 무관심보다는 열아홉 배 나은 반응이다. <나쁜 남자> 이후 그의 영화가 극장 흥행에서 거듭 실패하자 그를 지지하는 비평의 온도도 더 뜨거워졌다.

물론 필자는 그런 입장은 아니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만든 <아리랑>과 <아멘>엔 특히 실망했다. 셀프 다큐멘터리이자 픽션인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이 자신을 이만큼 키워준 서구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대목을 보며 그 노골적인 구애에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활을 뒤로 당겨 쏘듯이 이번 영화 <피에타>는 김기덕의 복귀작으로 기가 막힌 클라이맥스를 이뤄냈다. 여전히 그의 영화는 그 스스로 말하는 대로 ‘반추상’의 미학을 내세우지만 너무 직접적이어서 이물감이 드는 상징들의 배열과 몇몇 빛나는 장면들이 이질적으로 묶여 있다. 물리적으로 극단적인 폭력 묘사가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기독교적 구원의 내포를 강하게 풍기는 것도 여전하다. 베네치아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그의 영화에 대한 비평적 논쟁은 더 뜨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근심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반짝 특수를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런 유형의 영화가 배급 상영되는 현재의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바꿀 정책적 대안이 없으면 수상 프리미엄은 빠른 속도로 없어질 것이다.

대만의 나쁜 선례가 있다. 허우샤오셴이나 차이밍량 등의 감독은 1990년대 내내 숱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지만 대중의 시야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허우샤오셴의 <비정성시>(1988)가 베네치아영화제 그랑프리를 탔을 땐 대만에서 크게 흥행했지만 <밀레니엄 맘보>(2000)는 대만 극장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했다. 대만 관객은 이들 거장 감독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하면 오히려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피에타>의 수상을 계기로 다른 배급 벨트를 만들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20억, 30억원의 마케팅 예산을 쓰고 700개 이상의 상영관을 잡는 대다수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 저예산 예술영화들이 극장에 걸리더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대기업이 장악한 멀티플렉스 체인의 불공정 경쟁 관행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예산을 투여해 전국에 최소한 50개가 넘는 극장 상영 네트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자본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자금의 개입으로 이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그게 미션 임파서블일까. 시간은 많지 않다. 현재의 배급 상영 시스템에선 김기덕이나 홍상수 감독과 같은 개성의 신인 감독들이 나오기 힘들다.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관객을 기다리며 비평적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선관위 “안랩 백신 무료 배포, 선거법 위반 아니다”
안철수 중심으로 헤쳐모여?
태풍 불어 배 떨어지면 농민 책임?
이방인의 ‘리틀 시카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반미 시위 촉발시킨 동영상 제작자 “영화 만든 것 후회안해”
“집안일 많이 하며 죄악을 씻고 있어요”
[화보]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의 눈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1.

번잡한 일상 내려놓은 대도시의 매력 찾아…하루짜리 서울 여행

벽돌로 쌓은 제따와나 선원, 석가모니 따라 수행이 즐거운 집 2.

벽돌로 쌓은 제따와나 선원, 석가모니 따라 수행이 즐거운 집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3.

검은 물살 타고 대마도 밀려 간 제주 사람들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4.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신라 맹꽁이의 1300년 전 미소를 보라..설연휴 박물관 나들이 전시 5.

신라 맹꽁이의 1300년 전 미소를 보라..설연휴 박물관 나들이 전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