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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강탈·복수액션극이 감춘 ‘뼈’…공동체 붕괴

등록 2012-08-19 19:56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도둑들’ 1000만 돌파>

최동훈의 <도둑들>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자 내 휴대폰이 자주 울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대단한 흥행성공 요인을 묻는 일간지 기자들의 취재전화였다. 앵무새처럼 말하는 게 쑥스러워 두어 번 취재에 응하고 이후론 외면했다. 아무리 영화평론가라도 그걸 알 도리가 없다. 얼마 전 이 칼럼에 쓴 대로,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니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이었다. 필자의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지나치게 이 영화에 기대를 많이 한 모양이다.

심증이 가는 건 있다. 영화 속 전지현이 연기한 예니콜의 대사가 이 영화의 매력적인 핵심을 시사해준다. 그는 성형한 것 아니냐는 앤드류(오달수)의 빈정거림에 “이렇게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건데?”라고 항변한다. 굳이 영화 속 캐릭터에 몰입하지 않아도 시에프(CF)나 드라마, 다른 기존 영화에서 익숙한 스타들의 개성을 살짝 비틀어 변주하는 잔재미와 기왕의 외형적인 이미지를 더 극대화하는 멋 전시가 이 영화에선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었던 모양이고 난 잘 반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흥미를 느낀 건 다른 데 있다. 최동훈이 기성 장르의 관성을 갖고 들어와 자기 식으로 비튼 결말이었다. 강탈영화 장르와 복수액션극을 버무린 이 영화의 끝은 돈을 벌 목적으로 뭉친 팀의 붕괴다.

그들이 서로 배신하고 뿔뿔이 흩어지며 도둑질하는 과정에서 진한 감정을 나눈 첸(런다화), 씹던껌(김해숙) 커플은 영화 중반에 일이 틀어져 함께 죽는다. <도둑들>은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처럼 하나의 팀 공동체가 일확천금 목적을 이루고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배신한 줄 알고 증오했다가 오해를 풀고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는 마카오박(김윤석), 펩시(김혜수) 커플 사연도 당장 화면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새로 시작될 거라는 조짐만 보여주고 말 뿐이다.

요컨대 이 영화는 메가톤급 흥행을 기록한 여타 한국 흥행영화들처럼 공동체의 붕괴를 결말에 담는다. 그런 까닭에 <도둑들>이 순수오락영화이며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지 않고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식으로 대다수 언론에 실린 분석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어떤 영화든 거대 다수가 보는 영화에는 집단의식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잘나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나와서 도둑질을 벌이는 이 영화에는 통렬한 부분이 있다. “도둑인데 남의 것 훔치는 게 뭐 어때서?”라고 등장인물들은 당당히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도둑들이기 때문에 서로 함께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지 않아도 전혀 괘념치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전지현이 연기하는 예니콜은 홍콩의 어느 호텔 풀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다가 자신이 뒤통수를 친 펩시의 방문을 받고 혼비백산한다. 설상가상으로 이전에 사기를 친 골빈 미술상 부호인 남자까지 그곳에 우연히 나타난다. 예니콜은 풀장 바닥에 숨어 호흡곤란을 버티며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술상 남자가 펩시에게 친구분이 너무 오래 보이지 않는 거 아니냐고 걱정해주자 펩시는 경쾌하게 말한다.

“괜찮아요, 그런 애는 죽어도 돼요.” 그녀가 산뜻한 톤으로 말해 객석에서 웃음이 일게 한 이 대사에는 뼈가 있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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