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도둑들>
평일 오후인데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상영하는 극장 안 객석은 꽉 차 있었다. 관객층도 남녀노소를 망라해 다양했다. 이 영화가 올해 최고의 흥행영화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거의 만장일치로 언론의 호평을 접한 상태에서 뒤늦게 영화를 본 나는 기대가 커서인지 좀 심심했다. <오션스 일레븐> 유의 구성으로 전개되는 중반부까지는 ‘강탈영화’ 장르로 보기에는 맥이 빠진다. 결국 엉뚱한 곳에서 태양의 눈물이라 불리는 보석을 강탈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 반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영화 후반부는 복수 액션극으로 톤을 바꾼다. 마카오 박을 연기하는 김윤석이 직접 와이어를 타고 벌이는 아파트 총격 액션 장면은 서극의 <순류역류>라는 레퍼런스를 떠올리더라도 재미있었다. 비로소 대작영화의 규모가 보였다.
클라이맥스 액션 장면이 끝난 뒤에도 영화는 한참을 이어진다.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고루 적절한 엔딩을 주느라 그리 된 것 같은데 그러나 앞서 강탈 시퀀스에서 지녔던 의문이 이 대목에서 똬리를 틀고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영화는 무척 자세히 설명하려 애쓰는 것 같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 보석의 주인에게서 훔친 보석을 다시 그 주인에게 판다는 건 그렇다 쳐도 그 과정에 복수극이 끼어드는 건 어딘가 어색하다. 복수의 집행자인 마카오 박이나 상대편인 홍콩 마피아 보스나 별로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살인기계처럼 보이는 홍콩 보스나 그의 졸개들의 면면은 복수극의 내적 활력보다는 액션의 도구적 장치로 기능하는 듯이 보인다. 겉은 요란하고 소란스러운데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이 영화가 배우들의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지현은 예쁘고 김윤석은 여전히 힘차다. 홍콩 배우 런다화(임달화)도 출연분량은 짧지만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저게 배우의 멋이구나 싶었다. 김수현은 너무 일찍 퇴장하는 게 아쉽다고 함께 본 여성관객은 말했고 이정재가 악당 역을 즐기듯이 화면에 서성거리는 것도 좋았다. 오달수는 여전히 약방의 감초 역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어떤 배우도 그가 캐릭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건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도둑들>에서 김윤석과 김혜수 커플, 임달화와 김해숙 커플은 로맨스 비슷한 감정으로 이어져 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이들은 전부 돈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다. 이 비대칭적 세대간의 균열을 영화가 요령 있게 설득해낸 것 같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어느 쪽이든 다 배우들의 멋을 보여주기 위해 소용되는 장치 같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대작의 외피를 두른 오락영화가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실은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 빠르고 잠시 멈춰 서서 인생의 멋과 회한을 반추할 여유가 없다. 최동훈의 이전 작들도 그랬지만 그의 연출호흡은 속도감을 중시한다. 그 속도감의 유지 속에 배우들의 매력을 전시하는 데는 능하지만 그 가운데 제대로 자세를 잡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타짜>에서 (김윤석을 삽시간에 스타로 만든) 아귀의 첫 등장장면처럼 드물게 시각적 인장을 찍는 장면이 <도둑들>에는 없다. 당장의 멋도 중요하지만 오래가는 멋을 최동훈 감독에게 기대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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