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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국제영화제 좀먹는 반문화적 도그마

등록 2012-06-10 20:03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유운성씨가 해임됐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그는 일전불사의 태도로 자신의 해임을 둘러싼 그간의 경과를 비교적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해임된 이유가 영화제를 돈 버는 이벤트로 보는 지역 토호들의 입장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주의 지역언론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올해 영화제 기간 내내 전주 지역 언론은 영화제 운영이 엉망이라는 식의 기사들을 실었고 유운성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그걸 조소하는 반응을 실었다. 영화제 폐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문화행사가 아니라고, 영화 위주로 운영되는 것을 비판한 지역언론 기자에게 항변했다가 결정적으로 괘씸죄에 걸렸다고 했다. 나는 그의 주장의 진실 여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유운성씨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이기도 하지만 평론가이기도 하다. 나보다 연배가 아래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나보다 훨씬 지식이 많고 생각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어느 계간지에 쓴 글을 보고 궁금해서 전화로 물어봤더니 그가 나중에 메일로 답을 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일주일이 지나도 답이 없어서 나는 그가 잊어버렸나 보다 했다. 한참 뒤 그의 답 메일이 왔을 때 나는 적지 않게 감동했다. 그가 보낸 답 메일은 그대로 어느 지면에 실어도 될 만큼 훌륭한 평론이었다. 프로그래머이자 평론가로서의 그의 됨됨이를 나는 이런 데서 진작 알아보았다. 그가 프로그래머로 일한 기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미학적으로 앞선 영화들을 알차게 소개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를테면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는 우리에게 미지의 명감독이었으나 유운성의 큐레이팅을 통해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됐다. 필리핀의 젊은 감독들도 그와 막역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치러지는 온갖 문화행사들 가운데 국제영화제만큼 돈이 새지 않고 알차게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지역 문화행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유지들은 떡고물 나올 구석 없이 이렇게 투명하게 전개되는 국제영화제가 아마도 눈엣가시일 것이다. 젊은 애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상찬하는 영화제용 영화들이야 대부분 일반 극장에서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든 것들뿐이고 평범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라야 인디밴드들이 대거 몰려와 공연하는 연주회들뿐이기 때문에 전주국제영화제가 비대중적인 문화행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국제영화제의 연륜이 꽤 쌓인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반문화적인 도그마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유운성씨의 죄는 그가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에 비해서 좀더 높은 식견을 지닌 것뿐이다. 그가 프로그래머로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너무 수준이 높았다. 그는 이 영화들이 훗날 이 땅의 영화적 토양을 살찌우는 수원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죄를 지었다. 나는 적당히 때 묻은 기성 평론가지만 나보다 후배라도 식견이 높은 사람은 높은 만큼 존경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유운성씨의 불운을 지켜보며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 받고 헌신하는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나 스태프 관계자들에게 ‘우리 너무 이러지 맙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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