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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잔인한 전쟁에 중독되는 병사들

등록 2012-04-29 21:42

<아르마딜로>
<아르마딜로>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덴마크 감독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의 전쟁 다큐멘터리 <아르마딜로>(26일 개봉)는 일종의 종군 다큐멘터리다. 아마도 제작진이 덴마크 군 당국에 근사한 기획서를 내서 촬영 허가를 받았을 이 프로젝트는 그쪽에서 원했을 해피엔딩을 담고 있지 않다.

처음에 아프가니스탄의 아르마딜로 기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덴마크 병사들의 파병 생활은 평탄했다. 병사들은 꾸준히 정찰을 나가고 탈레반의 매복 기습에 대비한 긴장을 견디며, 쉬는 시간에는 포르노와 폭력적 게임을 컴퓨터로 즐기며 히히덕거린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하며 동시에 두려워한다. 탈레반이 설치한 폭탄에 부대원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들의 긴장된 감정은 증오와 분노와 가학과 공포 등의 감정으로 넓게 퍼진다. 마침내 아비규환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들은 조금씩 미친다. 탈레반을 사살한 다음에는 도축된 동물들처럼 그들의 시체를 마구 다루면서도 그들은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201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캐스린 비글로의 탁월한 전쟁영화 <허트 로커>처럼 <아르마딜로>는 전쟁에 중독된 병사들의 삶을 다룬다. 폭발물 제거반 병사들이 주인공이었던 <허트 로커>에서 병사들은 시청각 정보가 제한된 채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을 제거하는 임무에 따르는 극도의 긴장과 공포를 두려워하면서도 거기 중독돼 버린다. 그들은 대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르마딜로>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대다수 병사들이 결국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갔다는 후일담을 담은 자막을 볼 때이다. 그들은 다시 원래의 삶을 살 수 없다. 여기에는 좋고 나쁨과 선악의 구분을 떠나 전쟁 그 자체의 속성을 파고드는 세밀한 관찰의 힘이 있다. 도덕과 윤리가 무화되는 경지에 들어서서 죽음을 경계에 둔 삶에 빠져드는 병사들의 병적 몰입 상태를 보여주면서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전투 때문에 황폐한 삶을 견디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모습이 비친다.

전쟁은 대개 거대한 명분을 달고 치러지고, 선악의 대결이라는 고전적인 도식을 갖고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전쟁 자체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과 자본의 욕망에 따라 내몰린 병사들과 백성들은 꼭두각시처럼 전쟁에 반응하며 서서히 거기 중독되고 윤리적 감각은 둔감해진다. <아르마딜로>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건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전쟁의 복잡한 속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병사들이 즐기는 폭력 게임과 포르노는 우리가 대개 소비하는 전쟁 스펙터클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자신들은 안전한 채로 엿보며 즐기는 외설적 쾌락이라는 점에서 포르노와 폭력 게임은 차라리 솔직하다.

그 병사들이 화면으로 보는 폭력과 실제로 행하는 폭력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윤리적 감각도 이미 마모될 대로 마모돼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자문을 <아르마딜로>를 보며 하게 된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병사들을 따라다니며 찍은, 심지어 병사들의 헬멧에 장착된 소형 카메라에 담긴 생생한 영상을 통해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시를 주는 이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질문은 뜨끔하다. 정치가와 자본가와 학자들이 혹세무민하는 가운데, 실제 전쟁터에 내몰린 가난한 집안 출신의 병사들과 현지 주민들은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들처럼 버려지고 거기 길들여진다. 그래도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거기 중독돼버린다. 불편한 진실이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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