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한국 영화감독들이 대개 그렇듯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연출한 윤종빈은 권력과 물욕을 체화한 남자들의 허장성세를 자기 과시 없이 보여준다. 그게 저점을 찍으면 전작 <비스티 보이즈>처럼 착 가라앉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멜로드라마적 파국으로 끝났던 그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도 비슷했다.) 강남에서 꽤 돈 잘 벌고 사는 내 지인은 현대 한국 영화 가운데 <비스티 보이즈>만한 영화를 못 봤다고, 평론가들이 제대로 평가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석에서 힐난한 적이 있다.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명품 옷을 입고 부자 흉내를 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 곁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잔뜩 위장을 하고 사는 자들의 공허와 절망을 그처럼 잘 그려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도 <비스티 보이즈>가 심하게 박한 대접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범죄와의 전쟁> 역시 마초인 척 으쓱거리는 남자들 이야기지만 전작들에 비해 훨씬 촉촉하고 화면에 윤기가 난다. 감독이 이미 언론에 밝힌 대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삶이라서, 어쩔 수 없이 연민을 갖게 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전작들에 비해 희비극적 결이 동시에 화면을 싸고도는 감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부연할 필요 없는 연기자로서 최민식은 우습고 슬픈 주인공의 초상을 자연스레 껴안는다. 그가 연기하는 전직 세무공무원 최익현의 가장 큰 비극은 정체가 없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들 사이에 끼어 거들먹거리는 그에게 먼 친척뻘 동생이자 보스이기도 한 최형배는 묻는다. “대부님은 정체가 뭡니까?” 그는 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반달이다. 폭력으로 욕망을 해결하는 건달이 아니면서도 건달들에게 폭력을 사주해 자기 이익을 챙기고 권력자들에게 기대어 폭력배들을 이용하고 버린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최형배가 최익현에게 자꾸 ‘대부님’이라고 부르니까 영화 중반에는 이 영화가 흡사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에 대한 풍자 조롱 영화처럼 착각이 들기도 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에서 남성주인공들의 위엄을 미화할 수 있었던 삶의 흔적이 <범죄와의 전쟁>의 인물들에게서는 아예 없다. 권불십년이라고, 조직폭력단의 보스를 포함해 다들 젊다. 어떤 최소한의 룰을 지키며 끝까지 살아남는 롤모델이 없는 판에서 야바위꾼 같은 최익현만 살아남는다. 인물의 존엄을 느낄 수 없는 대신 연민만 생겨나는 건 당연하다. 겉으로는 다 으스대고 거들먹거려도 고관대작은 물론이고 길거리 깡패에 이르기까지 협잡과 배신을 서슴지 않는 양아치들의 세계가 우리 사회라는 이 영화의 관점은 장르관습의 토대인 신화적 믿음을 마구잡이로 무너뜨린다.
할리우드 장르영화가 신화적 기능으로 현실의 갈등을 중재하는 면모를 우리나라 감독들은 너무 낯간지럽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나는 한국영화의 이런 패기가 좋다. 다만, 현실이 대개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다 비천하게 구는 것도 상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윤종빈 감독이 다음 영화에선 그런 균형 감각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사족이지만 최형배의 심복으로 나온 김성균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감정 없는 그 인간의 내면에 뭐가 들어있는지 그 일대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진짜 나쁜 놈의 눈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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