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나는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굳이 만나고 싶지도 않다. 스크린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는 세상을 근심하면서도 그 근심을 딱딱하지 않은 알맹이로 몽글몽글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배우이자 제작자이자 감독으로서 멋있게 늙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클루니의 신작 <디센던트>(16일 개봉)를 보고 다시금 그의 작품 선구안에 호감을 느낀다. 딱히 대박을 노린 영화는 아니지만 여운이 진한 영화이고 충분히 대중적 외연도 지닌 영화,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는 유독 늙고 허물어진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망가졌다는 게 아니라 얼굴의 주름이 늘어진 것이나 행동의 절제된 패턴이 다소 허물어진 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디센던트>에서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캐릭터에 맞춘 결과지만 자신을 캐릭터 속에서 방기하는 그 모습에 연륜과 품격이 느껴진다. 아내가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데 사고뭉치 두 딸을 돌봐야 하는 중년 남자 맷 킹이 그가 이 영화에서 연기하는 인물이다. 맷 킹은 가정을 소홀히 한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가족에 헌신하며 잘 살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아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의사에게 듣는다. 설상가상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얘기를 맏딸에게 듣고 더 충격을 받는다.
딸의 얘기를 들은 후 맷 킹이 헐렁한 샌들을 신은 채 다닥다닥 종종걸음으로 친구 집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있다. 채신머리가 하나도 없이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아내에 대한 배신감으로 황망한 그의 기분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이런 식의 예를 들 만한 장면들이 <디센던트>에는 꽤 있다. 습관대로 살아오던 중년 가장이 가족의 위기를 맞아 문득 주변을 둘러봤을 때 실은 행복하게 살고 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현실을 깨닫고 황망해한다. 사실 그 자신도 별로 잘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주변의 삶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사람이 그걸 깨닫고 뭔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곤궁에 처한 추레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안간힘을 쓰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늙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원제가 ‘후손들’(The Descendants)인 <디센던트>는 하와이가 배경이다. 맷 킹은 하와이 원주민의 혈통이 섞인 인물로 나온다. 그는 왕족이었던 할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땅을 개발업자들에게 막 팔려 하고 있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축에 놓고 병행되는 이 사건에서 맷 킹은 결국 마음을 바꿔 먹는다. 토건개발 대 전통 공동체의 대립이라는 선명한 각을 굳이 세우지 않고도 자연스레 생태적인 전통주의에 기우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도식적이지 않다. 땅을 개발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되는 부동산업자들 사이에 아내가 바람을 피웠던 그 남자가 있다는 사실도 맷 킹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명분이 아니라 일상의 정념에 휘둘리며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삶의 길을 희미하게 찾아내는 남자, 그로 인해 비교적 안정된 가족공동체를 회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조지 클루니는 잘생긴 스타배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몸을 낮추면서 그 인물에 맞게 저렴해지고 그 때문에 또다른 위엄을 갖춘다. 지나친 편애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동시대에 비슷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남자로서 나는 조지 클루니 같은 영화인에게 질투와 경탄을 동시에 느낀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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