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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7편

등록 2006-04-19 22:56수정 2006-04-19 23:07

[커버스토리]
장편 영화만 194편. 뭘 고를까. 무작정 이름 아는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는 방법이 있겠지만, 유명 감독이라고 항상 수작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또, 전세계 42개국의 감독들을 제대로 알기도 힘들다.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한겨레> 독자를 위해 특별히 7편을 추려 ‘강추’한다.

식민지화가 낳은 기이한 페루풍습

마데이누사 (감독 클라우디아 로사, 페루/스페인)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페루 산간지역 마을엔 기이한 풍습이 있다. 그리스도 수난일부터 부활절 사이의 기간, 마을 사람들은 한껏 흥청대고 온갖 죄악을 마음껏 저지른다. 심지어 아버지가 딸의 동정을 빼앗는 것조차 공공연히 묵인될 정도다. 죽은 신은 부활 전까진 지상의 죄악을 내려다 볼 수 없으리라는 기이한 발상 탓이다. 식민지에 이식된 유럽 문화가 토착화하고 변형됨으로써 생겨난 이 풍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 주인공의 이름이자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를 의미하기도 하는 제목은 영화의 주제를 절묘하게 요약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방문자와 토착 공동체 간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예측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개시키는 감독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

30년 뒤 되살려낸 야구 코미디

배드 뉴스 베어즈 (리차드 링클레이터, 미국)

<비포 선라이즈> <스쿨 오브 락> <비포 선셋> 등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30년 전에 만들어진 동명의 야구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음악 영화 <스쿨 오브 락>의 구성과 인물을 야구 영화로 고스란히 옮긴 듯한 유쾌한 코미디로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유색인종, 환자와 장애인, 불량소년 등으로 구성된 소년 야구팀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무능하고 무책임한 코치라는 설정은 어딘지 아동 영화의 전형에 대한 짓궂은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감독의 손길은 섬세하고, 베어즈 팀 코치 버터메이커 역을 맡은 빌리 밥 손튼의 연기 또한 <스쿨 오브 락>에 나온 잭 블랙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칸’ 감독상 룽긴의 최신작

뿌리 (파벨 룽긴, 러시아)

시종일관 흥겹고 떠들썩한 이 영화는 <택시 블루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러시아 감독 파벨 룽긴의 최신작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딕은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의 친척들을 찾아주는 알선업자다. 그런데 그들이 찾고 있는 고향과 그곳의 사람들은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이에 에딕은 근처 마을 사람들을 매수하여 가짜 친척 노릇을 하게끔 사기극을 꾸민다. 잠시 동안의 재회로 끝날 것 같았던 가짜 친척들과 의뢰인들 사이에 진짜 애정이 싹트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사회의 가치관 상실 및 도덕적 타락의 상황을 집요하게 파헤쳐왔던 룽긴 감독은 <뿌리>에서 좀더 유연하고 넉넉하며 성숙한 시선으로 돌아왔다.

강렬한 음악·충격적 노동현장

노동자의 죽음 (미카엘 글라보거, 오스트리아)

온 몸을 울리는 존 존의 강렬한 음악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소비에트 초기 노동자 영웅에 관한 프로퍼갠더 필름이 화면에 떠오른다. 이후 그 과장된 허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 종일 비좁고 어두운 탄광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는 우크라이나 노동자들, 그냥 걷기에도 숨이 벅찰 험난한 산길을 무거운 유황덩어리를 들고 뛰어가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나이지리아 도살장의 노동자 등 세계 각 지역의 충격적인 노동의 현장이 숨 돌릴 새 없이 펼쳐진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폴란드 탄광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 <척박한 땅>과 인도 구자라트 지역 선박해체 현장을 기록한 <해머와 불꽃>이 한자리에서 상영된다.

‘인도 거장’ 가탁을 알고싶다면

감상적 오류 (리트윅 가탁, 인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로 작고 30주년이 되는 인도의 거장 감독 리트윅 가탁의 회고전을 마련했다. 그의 장편 전작 가운데 프린트 수급 문제로 아쉽게 취소된 한 편을 제외한 7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만일 이 낯선 영화감독의 세계에 접근하는 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바로 이 작품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권하고 싶다. 오래되어 낡아빠진 자신의 자동차에 생명이 있다고 믿고 ‘그녀’를 애지중지하는 택시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탁의 초기 걸작이자 브뉴엘적 코미디인 이 작품은 서구 근대의 기계장치에 대한 비서구인의 양가적 태도(공포와 매혹)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또한 카메라와 감독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도 읽힐 수 있다. 도무지 웃음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코믹한 상황들로 가득한 이 작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주제와 탁월한 완성도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연주회중 사라지는 드럼주자

노래하는 검은 새가 있었네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그루지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과 같은 세대인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만은 우리 곁에 남아 여전히 매혹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노래하는 검은 새가 있었네>는 이오셀리아니가 망명 전 소비에트에서 만든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오케스트라 드럼 주자인 주인공은 연주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만 자리를 지킬 뿐 그 사이엔 몰래 연주장을 빠져나가 자신만의 삶을 만끽하곤 한다. 일상의 사소한 행복과 삶의 리듬에 대한 찬가인 이 작품에 상영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때 정작 제작진들조차도 그 이유를 몰라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당시 관료들에겐 심히 못마땅했던 것.

감독이 주연한 라다크 가는 길

천상고원 (김응수, 한국)

<달려라 장미>에서의 ‘상업적’ 외피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김응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을 이들에게, 그의 신작 <천상고원>은 초심으로의 회귀이자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단출하게 꾸려진 스태프들을 이끌고 라다크로 향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영상들은 연출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구분을 쓸모 없게 만드는 영화적 ‘영도’의 영역에 속해 있다. 사라진 자의 흔적을 찾는 동시에 스스로의 과거를 고원에 묻기 위해 여행을 떠난 주인공 역을 감독 자신이 직접 연기하고 있다. 박기웅 촬영감독에 의해 찍혀진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의 HD 영상은 <천상고원>이 초저예산 영화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들 만큼 빼어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김응수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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