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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수인이, 동수, 예진이...세월호 아이들이 엄마를 입고 무대 위로

등록 2023-04-08 08:00수정 2023-04-09 08:17

[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장기자랑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주인공
동명의 연극 3년 제작 과정 담아
엄마들, 교복 입고 자식 캐릭터로
참사에서 사랑을 찾고 말하다
연극 <장기자랑>에 출연한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엄마들이 연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를 하는 모습. 진진 제공
연극 <장기자랑>에 출연한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엄마들이 연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를 하는 모습.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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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9주기다. 때 맞춰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이 개봉했다. 극장 불이 꺼지고 다큐가 시작될 때 손수건을 잊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곤란하네. 분명 눈물 콧물 다 흘릴 텐데, 마스크 속이 또 무참해지겠어” 싶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극장을 나서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예상했듯 마스크 속을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가슴이 무너져 흐른 눈물만은 아니었다. 극장에 앉아 있었던 다른 관객들도 그랬을 텐데, 누군가 “하핫” 하고 첫 웃음을 터트린 이후 우리는 좀 더 편안하게 소리 내어 웃으며 ‘장기자랑’을 즐겼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가슴에 품어 놓은 세월호에 대한 마음을 되새기면서도 소리 내어 웃는 일. 2014년 단원고 학생이었던 수인이, 동수, 예진이, 영만이, 순범이, 윤민이, 애진이, 그리고 그날 그 바다에 있었던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를 떠올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일.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은 그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해낸다.

‘심리치료’ 엄마들 찾아간 연극인

참사 다음해인 2015년, 세월호 희생자와 생존자 학생의 엄마들은 함께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심리치료의 일환이었다. 그 과정이 끝날 즈음이 되자 사람들은 엄마들이 다시 집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들은 “그것도 괜찮겠네” 하고 무심하게 받아넘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온 것이 연극인 김태현 감독이었다. 그는 성실하게 엄마들을 설득한다. 이 열정적인 연극인에게 “노”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 쭈뼛쭈뼛 연극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엄마들은 조금씩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초짜들의 극단 생활이 시작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3년. 노란리본은 연극 4편을 300회 넘게 무대에 올린 베테랑 극단이 되었다. 다큐 <장기자랑>은 이 중 세번째 작품이었던 동명의 연극 <장기자랑>의 제작 과정을 따라간다. 캐스팅에서부터 엄마들이 꼭 오르고 싶었던 한 무대에 서기까지, 약 3년여의 시간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아이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차고 넘치는데 그 말을 꺼낼 자리가 없었다. 때로 ‘희생자’라는 이름에만 갇혀 있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그 다채로웠던 생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도 싶었다. “예진이 엄마입니다”, “수인이 엄마입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었던 극장은 소중한 공간이었다.

연기는 또 다른 애도의 과정이었다. 연극 <장기자랑>이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전 함께 장기자랑을 준비한다는 줄거리 안에서 엄마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자신의 아이를 닮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모델이 꿈이었던 순범이, 랩을 잘했던 영만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예진이, 만화 <원피스>의 루피를 사랑했던 동수…. 아이들은 엄마의 몸을 입고 무대 위로 돌아왔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연극”. 처음 이 작품을 설명하는 몇개의 키워드를 들었을 땐 가족 드라마에 기반을 둔 휴먼 다큐를 떠올렸다. 하지만 <장기자랑>은 나의 한심스러운 상상력의 뒤통수를 치고 동시에 토닥이며 카메라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그리고 아이들을 내 품에서 자연스럽게 떠나보낼 기회를 잃었기에 평생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을 연극이라는 치열한 예술의 현장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면서 연극 작품의 주인공 자리를 둘러싼 불만과 질투, 화해와 협업, 그리고 동료애라는 예상치도 못했던 스토리가 스크린 위로 떠오른다. 거기에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하는 영만이 엄마-이미경, 수인이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도현, 애진이 엄마-김순덕, 예진이 엄마-박유신, 순범이 엄마-최지영, 윤민이 엄마-박혜영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누구의 유가족’이 자신만의 얼굴을 드러내며 비로소 고유명이 되는 놀라운 순간이 펼쳐진다.

연극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 엄마들. 진진 제공
연극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 엄마들. 진진 제공

엄마·가족·우리…

세월호뿐만 아니라 제주 4·3에서 광주 5·18을 지나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다양한 국가폭력과 국가의 무능으로 일어난 참사에서 저항의 구심점이 유가족이 되고 결집의 언어가 가족 개념에 사로잡히는 것에 대해 늘 고민했다. ‘아들’, ‘딸’, ‘우리 아이들’로 호명될 때에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한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자랑>은 ‘엄마’가 단순히 가족 안에 침잠되어 있는 이름이 아닐 수 있으며, ‘가족’ 역시 배타적인 범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엄마들’의 이름과 만나면서 그 옆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노란리본과 함께하고 있는 연극인 김태현은 누구인가? 그는 어떻게 저 지난한 갈등의 시간을 견딘 것인가. 3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버틴 감독 이소현과 제작진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여전히 세월호라는 화두를 꽉 쥐고 있는가. 그리고 극장에 앉아 있는 당신들은 또 누구인가. 어째서 당신들은 마음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굳이 극장에 들어와 <장기자랑>이라는 놀라운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는가. 세월호를 아직 떠나보내지 않은 ‘우리’의 이름은 그리하여, 무엇인가.

극중에서 영만 엄마-이미경은 노래한다. “사랑, 지금까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열어주는 마음의 문~!” 9년 전, 세월호는 대한민국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로 하여금 민주시민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열게 해주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감히 사랑을 말하고, 감히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장기자랑>에서라면 가능할 것 같다. 그건, 놀라운 일이고, 이런 행운은 이 모든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것임을 다큐는 확인시켜준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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