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생존자 유가영(26)씨가 3월30일 도서출판 ‘다른’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판사 다른 제공
“9년이 지나도 세상은 놀랄 만큼 달라진 게 없었어요. 재난이 일어나면 피해자나 생존자들만 남아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다른 사람들은 방관만 하잖아요. 왜 아직도 재난은 아무에게나 갑자기 찾아온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생존자 유가영(26)씨는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서 또래 친구들의 죽음을 또다시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놀러 갔다 사고 난 게 자랑이냐’는 식의 비방,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와 유가족, △부족한 심리치료 지원,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들….
특히 현장에서 친구들을 잃은 고등학생 생존자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유씨는 2014년 때 고통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유씨는 3월3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이 모이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안타까워했다. “재난 직후 1∼2년은 생각조차 정리가 안 되는 혼란스러움에 상담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럴수록 중요한 건 생존자들이 함께 연대해야 해요. ‘같은 일을 겪었고, 앞으로 비슷한 삶을 살아가겠구나’라는 동질감만으로도 살아갈 위안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생존자 유가영(26)씨가 3월30일 도서출판 ‘다른’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판사 다른 제공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 만에 단원고로 돌아온 유씨는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곁에 없는 친구들의 노란 명찰을 만들고, 주고받았던 편지와 대화 등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억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는 씨랜드 참사 이후 유족이 만든 어린이안전 체험관을 찾고,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만든 단체인 ‘진실의힘’을 방문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분들을 만나며 인간은 상처를 받아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은 다시 겪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요. 저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어떤 것에도 열정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던 저에게 처음으로 생긴 목표였어요.”
이후 유씨는 생존한 친구들과 함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뜻인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각자 지닌 상처를 도구 삼아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돌봐주자는 의미였다.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뭔지 알려주는 인형극과 책을 만들고, 기후 재난 보드게임 강사로 활동했어요. 지난해 울진 산불 때는 피해 어르신을 돕는 ‘사랑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른 재난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돕는 과정에서 저도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유씨는 지난 9년간의 일기를 담아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책을 펴냈다.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거절해왔던 유씨가 처음으로 용기 내 세상에 목소리를 낸 것이다. 책에는 대학 시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진단받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등 ‘깊은 상처 속에서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세상을 지독히 원망하던 순간’들도 담겼다. 유씨는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약을 먹으며 상담을 받는다. 초반 1∼2년은 잘 지낸다 싶어도 갑자기 수년 뒤 상태가 악화하는 경우도 많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담 등 의료적 지원이 끊겨 이를 지원받기 위한 소송까지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기한 없는 국가의 상담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 중인 유씨는 재난재해 현장을 누비는 비정부기구(NGO) 활동가가 되는 게 꿈이다. “20대 초반까지는 세상을 외면하고 지냈는데, 이젠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요. 저랑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분들에게 발버둥 치면서 살다 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생존자 유가영(26)씨가 3월30일 도서출판 ‘다른’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나래 기자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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