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 피디의 방탄소년단 다시보기’로 6월 한달이 즐거우셨나요? 오티티 충전소가 마련한 두번째 여름 특집. 드라마 <마우스> 최란 작가가 추천하는 ‘내 인생의 장르물’을 7월 한달간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6월엔 비티에스! 7월엔 장르물!
“이 작가, 기본도 안 되어 있네!” 참담했다. 이런 소리를 듣다니! <신의 선물―14일>(2014)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150장이 넘는 기획안과 대본을 제작사 쪽에서 한 드라마 감독에게 전달했다. 그에게서 돌아온 피드백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빌런(범인)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고, 끝까지 숨겼다는 것. 제작사를 통해 전달받은 정확한 워딩은 이랬다. “아니, 세상에 어느 드라마가 범인을 안 까고 이야기를 전개해요? 빌런을 빨리 까야지. 이 작가 기본도 안 되어 있네!” 지금까지도 워딩 하나하나를 정확히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단단히 상처받은 모양이다.
수긍이 안 됐다. ‘빌런을 숨기면 왜 안 된다는 거지?’ 그때만 해도 범죄수사물에서 빌런을 초·중반부에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마지막회에서 밝히는 구성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을 전달받고 의기소침했었다. ‘내가 틀렸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내가 정말 뭘 모르는 작가인 걸까?’
절망하고 있는 내게 지인이 내 구성 방식과 유사하다며 추천해준 작품이 바로 미국드라마 <킬링>이다.
<킬링> 시즌1·2를 보고 나서 외쳤다. “유야호!”…가 아니라 “내가 틀린 게 아니잖아!” 범인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감추고 가더라도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준 작품. <킬링>은 그래서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2011년 시즌1을 시작한 <킬링>은 17살 소녀 로지 라슨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물이다.
덴마크 원작을 바탕으로 한 리메이크작이다.
지난회에서 소개한 <빌어먹을 세상 따위>가 ‘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인다면, 이 드라마의 소재는 아주 단순하다. <킬링>은 이 단순한 소재를 어떻게 진행시키느냐에 따라 긴장감이 들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구성의 짜임새가 돋보인다. 한마디로 아주 잘 짜인 드라마다. 그래서 꼭 두번 보길 권한다. 진범을 아는 상태에서 추리적인 디테일을 복기하면서 용의자들의 표정, 대사 같은 걸 다시 보고 들으면 새삼 소름 끼치는 드라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장르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구성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된다.
빌런을 찾는 전형적인 수사드라마의 틀을 정할 때 크게 세가지 구성을 선택한다.
첫째는 빌런을 먼저 밝히는 구성이다. <형사 콜롬보>를 아는가? 크아! 후줄근한 레인코트를 걸친 채, 시침 뚝 떼고 완전범죄를 이뤄냈다고 쾌재를 부르는 범인을 향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던지는 대사! “아차! 그런데 한가지만 더요.” 이 대사가 나올 때면 벌떡 일어나 손뼉 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캬~ 지금 생각해도 명작이다. <형사 콜롬보>가 이런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범인이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콜롬보가 등장해 그 범인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보여준다. 내 드라마 <일지매>(2008)에서도 처음부터 빌런 인조를 보여줬다. 그리고 용이(일지매)가 아버지를 죽인 검을 찾으며, 인조를 찾아내는 구성이다.
둘째는 처음에는 빌런을 밝히지 않다가 극 중간, 어느 적절한 부분에 시청자에게만 알려준다. 극 초반에는 시청자들이 주인공과 같이 빌런을 찾다가, 중반부터 시청자들은 빌런을 알고 주인공만 모르는 구성으로 극이 전환된다.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국드라마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이 바로 <신의 선물―14일> <킬링> 같은 방식이다. 빌런을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밝힌다. 이런 구성은 주인공과 시청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범인을 찾게 한다. <마우스>(2021)를 쓸 때도 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름(이승기)의 정체를 언제 밝힐 것인가? 초반에 밝힐 것인가, 후반에 밝힐 것인가? 기획하는 내내 고민했다. 많은 이들이 바름의 정체를 초반에 밝혀 빨리 충격을 주자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극 초반에 바름의 정체를 밝혀버리면 시청자들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바름에게 애정을 갖지 않아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킬링>은 단순히 범인 찾기에만 몰두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로지 가족의 아픔을 디테일하게 다룬다. 살인이 피해자뿐 아니라, 그 유가족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로지의 죽음 이후 그 가족들이 서로에게 주는 상처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로지의 죽음에 대해 가족들이 서로에게 잘못이 있다며 할퀴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장면들을 보면, 저것이 진짜 슬픔에 젖은, 남은 사람들이 통곡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마우스>에서 봉이(박주현)를 통해,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그려 보려 노력했다. 장르물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피해자 가족이다. 혹시나 내가 모티브로 삼는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유가족들의 고통을 머리에서만 생각해서 그리고 있지는 않을까? 늘 고민하고, 조심스레 취재하면서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모든 드라마는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이야기다. 장르물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인간이다. 시청자들이 장르물을 범인 찾는 ‘킬링(시간 죽이는) 드라마’로만 여기지 않고, 그 사건 안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인간애를 함께 알아봐주면 괜히 울컥해진다. 고맙다. 이제는 범인을 마지막에 밝히는 드라마들이 꽤 많다. 한국 장르물이 더 발전하려면 끊임없는 도전이 이뤄져야 한다. 하니 틀 안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수많은 작가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주시기를.
후일담으로 마무리하겠다. 나에게 기본도 안 됐다며 내 기획안과 대본을 내쳤던 그 감독은 <신의 선물―14일>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범인을 끝에서야 밝히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범인을 마지막에야 까는 드라마를 왜 해요? 이 연출 기본도 안 되어 있네!”
맞다. 나 뒤끝 좀! 있다. 데헷!
드라마 <마우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