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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이코패스라 확신하는 소년의, 멜로물…성장물…블랙코미디

등록 2021-07-09 18:41수정 2021-07-10 02:31

[최란 작가의 내 인생의 장르물]
① ‘빌어먹을 세상 따위’

‘이재익 피디의 방탄소년단 다시보기’로 6월 한달이 즐거우셨나요? 오티티 충전소가 마련한 두번째 여름 특집. 드라마 <마우스>(티브이엔)의 최란 작가가 추천하는 ‘내 인생의 장르물’이 이번주부터 7월 한달간 이어집니다. 6월엔 비티에스! 7월엔 장르물!
“제이미, 넌 괴물이 아니야!
어? 나 같은 놈이 있네?
어리바리한 모습이 속내를 감춘 연기인가 싶었거든. 내가 연기한 어리바리 정 순경처럼.
그런데 이 녀석은 진짜 어리바리하잖아.
나랑은 과가 달라!
치밀하지도 않고 영악하지도 않고. 순진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멍청한 찌질이잖아?!!! 사람 한번 죽였다고 다 괴물이 되는 건 아니야.
됐고! 딱 한마디만 할게. 제이미 넌 괴물이 아니야!
참! 제이미. 제목 하난 끝내주게 잘 지었더라?
내가 세상에 날려주고 싶던 말인데…”
-<마우스> 프레더터 정바름이 제이미에게-

<마우스>를 준비하면서 사이코패스를 다룬 각종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발견한 드라마! 이토록 멋진 제목이라니! 사전 정보 없이 사이코패스물이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 발칙한 드라마는 스릴러 쪽보다 멜로다.

<렛 미 인>이 호러의 탈을 쓴 멜로 영화라면, 오늘 소개할 이 작품 역시 사이코패스물을 가장한 멜로물이다. 동시에 성장물이자, 블랙코미디다. 한마디로 종합장르물이다.

물론 모양새는 장르물의 탈을 쓰고 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대단한 반전이 있거나, 무릎을 탁 치는 기발한 트릭이 있는 드라마를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 아주 기발하다. 피가 낭자한 속에서도 낄낄거리는 유쾌함을, 가슴 뭉클한 묵직함을 동시에 던져준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죽여오면서,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는 소년이 이제 사람을 죽여보겠다고 결심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8부작 영국 드라마로 2017년 시즌1, 2019년 시즌2를 내보냈다.

이 드라마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레 엮어내는 기술이 뛰어나다. 거기에 더해 재기발랄한 구성, 리듬감 있는 편집, 드라마 전반에 깔리는 음악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본격 장르물이 아님에도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의 캐릭터 때문이다. 드라마를 쓸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인물 캐릭터다. 마우스를 기획할 때도 인물의 캐릭터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세상에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캐릭터를 만드는 데 수많은 고민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굳게 믿고, 전학생 얼리사를 죽이겠다며 얼리사의 위장 남친이 된 이 발칙한 소년 제이미. 좀 멍청해 보이고 찌질하다. 유약해 보이고 결단력도 없어 보인다. 상당히 수동적이다. 자기주장이나 의견 따윈 ‘개나 줘버린’ 모양이다. 그저 얼리사가 시키는 대로, 얼리사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인물이다. 보통의 작가들은 이런 매력 없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과감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했다.

여기에 반전 포인트가 있다. 극이 전개될수록 제이미가 얼마나 심지가 굳은 인물인지 알게 된다. 결국 모든 문제 해결은 제이미가 다 해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제이미는 얼리사와 다르게, 튀지 않는, ‘슴슴한’ 캐릭터이지만, 극의 중심을 잡고 존재감을 보여준다. 배우 앨릭스 로더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굿! 캐스팅이다.

자신이 사이코패스라 굳게 믿던 제이미가 얼리사를 향한 사랑을 깨닫고, 지저분한 화분에 꽃을 꽂아 준비하고 얼리사를 기다리던 장면은 근래 본 최고의 ‘심쿵 멜로신’이다.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뚜껑 달린 멋진 차에, 근사한 양복을 입고, 줄리아 로버츠에게 꽃다발을 안기는 리처드 기어보다 초라한 꽃화분을 들고 있던(심지어 얼리사에게 전하지도 못하고 실망하는) 제이미가 압승! 진정한 ‘멜로킹’ 등극이라 하겠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추천 이유는 수위가 센 소재와는 다르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인간의 관계, 치유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장르물을 쓰면서, 늘 놓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사건보다는 인간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드라마를 쓰는 이유기도 하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드라마는 가족에 대한 존재 가치와 인간의 의미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담담히 그려낸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던 제이미에게, 얼리사는 말한다.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아마도 제이미가 평생 듣고 싶어 했던 말일 것이다. 살면서 상처받은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얼리사로 인해 상처를 치유받은 제이미가 독백 내레이션하는 드라마의 엔딩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이 독백은 <빌어먹을 세상 따위>에서 제이미가 빌어먹을 어른이 되지 않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드라마가 명작이 될 수 있는 ‘키포인트’다. “이제 알 거 같아요.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빌어먹을! 제이미! 제이미!
헛소리 집어치워! 인간은 그저 사냥감일 뿐이라고! 의미 따윈 없다고!!!
근데… 제이미 널 보면 왜!!! 여기가 저릿거리는 거야.
아씨! 이 빌어먹을 성요한! 이게 다 성요한 뇌 때문이라고!!!
참, 제이미. 너! 시즌2도 했더라.
감히 너 따위 짝퉁 사패도 시즌2를 하는데… 아씨! 나도 해야 하나…?”
-<마우스> 프레더터 정바름이 제이미에게-

최란 드라마 <마우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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