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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그저 조금 더 귀여운 사람들의, 조금 더 상냥한 사회를 원해

등록 2021-05-28 18:26수정 2021-05-29 02:32

[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스페셜편. 공식 누리집 갈무리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스페셜편. 공식 누리집 갈무리

요즘 이 드라마를 다시 엔(N)차 시청한 일본 드라마 팬이 많을 것 같다.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을 연기한 남녀 배우가 지난주 깜짝 결혼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2016년 일본 <티비에스>(TBS) 화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많은 일본 드라마 팬들이 ‘최애 드라마’로 꼽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다. 왓챠를 비롯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올해 선보인 ‘스페셜’편은 ‘시즌’에서 공개 중이다.

아이티(IT) 회사에 다니는 35살 히라마사는 모든 것을 효율성과 과학으로 분석하는 전형적인 ‘이과 남자’로,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 25살 미쿠리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문과 여자’다.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취업했지만, 회사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지나치게 고학력이라는 이유로 계약이 해지된다. 그런 미쿠리가 아버지의 막무가내 소개로 히라마사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되면서 뜻밖의 재미와 재능을 발견한다. 갑자기 부모님이 은퇴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미쿠리는 도쿄에서 혼자 지내야 하지만 월세 낼 돈이 없다. 미쿠리는 히라마사에게 숙소와 가사 노동을 교환하는 계약 결혼을 제안한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듯 계약은 조금씩 틀어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녀가 동거하는 이야기는 뻔하지만, 항상 재미있다. 모든 걸 분석하는 남자와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는 부부 관계를 근로계약이라는 틀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그 결과 미쿠리는 하루 7시간, 주 5일 일하고 최저임금과 인센티브를 보장받는다. 문제가 생기면 ‘303호 컴퍼니’(두 사람은 303호에 산다)의 경영책임자 회의를 식탁에서 개최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꽤 직접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뿐 아니라 싱글맘,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올해 초 공개된 스페셜편의 주된 이야기는 미쿠리의 임신으로 벌어지는 소동이지만 그와 동시에 육아휴직뿐 아니라,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등 코로나 시대의 직장인이 겪는 문제들을 함께 보여줘 호평받았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호시노 겐은 유명 뮤지션으로,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호시노 겐이 직접 부른 주제곡 ‘고이’는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들이 추는 ‘고이 댄스’와 함께 신드롬을 일으켰다. 여자 주인공을 맡은 아라가키 유이는 ‘각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일본 최고의 ‘청춘 스타’다. <코드블루> <리걸하이> <아빠와 딸의 7일간> 등 유명작이 많다. 두 사람은 이번 스페셜편 촬영을 계기로 5년 만에 다시 만나면서 사귀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각키는 ‘집순이’로 유명한데다 데뷔 이후 큰 스캔들 한번 없다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결혼 발표 당일 일본 포털 검색어에는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나의 각키’, 각키가 떠나서 느끼는 상실감을 뜻하는 ‘각키 로스(Loss)’ 등이 올라와 많은 남성 팬들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했다.

국내 시청자에게 낯익은 얼굴도 나오는데 바로 오타니 료헤이다. 영화 <명량>에서 조선을 위해 싸우는 일본 병사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던 그는 내가 연출했던 <에스비에스> 예능프로그램 <룸메이트2>에 출연하기도 했다. 개그맨 조세호와 함께 트로트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도 나오지만, 이 드라마로 일본 꽃미남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약 중이다. 그래서 당분간 한국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 아쉽지만, 일본에서도 재일 조선인의 힘겨운 삶을 다룬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에 출연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특이한 제목은 헝가리 속담에서 따왔다. 인생에서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괜찮다는 의미이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다짐의 반어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화가 원작이어서인지 드라마 중간중간 다큐멘터리·예능·어린이 프로그램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로 치면 갑자기 주인공이 <인생극장>에 출연하고 <런닝맨>에서 뛰어다니고 ‘펭수’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식이다.

사실 이 드라마가 원하는 세상은 그저 조금 더 ‘귀여운’ 사람들의 조금 더 ‘상냥한 사회’다. ‘일상에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상징하는 ‘보통’이나 ‘평범’이라는 것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담겨 있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해도 당연한 사회, 갑질이나 성희롱이 부끄러운 사회, 동성 커플이나 싱글맘이 옆집에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말이다. 언어만 다를 뿐 당연히 우리 사회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들이 결혼한다는 ‘스포’를 알고 봐도 재미있는 게 로맨틱코미디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현실에서도 결혼한다니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마 지금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는 일본 시청자들도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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