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시작한 드라마 ‘유괴의 날’(ENA)은 어른의 자격을 묻는다.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남의 딸을 유괴하고선 그 아이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보살피는 유괴범이 나쁠까, 자신의 딸을 실험체 삼아 거액의 투자까지 받는 부모가 더 나쁠까?
‘유괴의 날’이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는 또 있다. 주연의 자격이다. 어수룩한 유괴범 김명준 역의 윤계상과 함께 어린이 배우 유나가 이 드라마를 이끈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티브이(TV) 미니시리즈에서 아역을 중심에 두고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나는 지난해 3월 애플티브이플러스(OTT)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파친코’에서 주인공 선자의 아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부산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했고, 우는 연기를 잘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작품마다 깊은 사연을 지닌 역을 주로 맡아온 유나가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은 교육방송(EBS) ‘번개망토의 비밀’이다. 실사 캐릭터 번개맨의 어린 시절을 다룬 12부작 스핀오프 드라마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방영했다. 유나는 10살 공다해 역을 맡아 한번개(이유찬)·섬세한(박태우)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며 또래한테 꿈과 희망을 준다. 유나는 ‘번개망토의 비밀’ 방영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요즘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데,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성장드라마가 나와서 좋다”고 했다.
유나는 어느 날 날아온 망토에 놀라고 풀숲에 숨어 망을 보는 등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로 시원하게 발차기도 한다. 악당을 물리치는 데만 초점을 둔 여느 영웅물과 달리 일상에서 친구를 돕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평범한 아이들의 활약상을 본 또래 아이들이 응원 영상도 많이 요청했다고 한다. 유나는 “아이들이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이 작품으로 알아보는 친구가 많아졌다”고 했다.
어린이 배우들이라고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캐릭터 분석력이 웬만한 어른 배우 못지않다. 유나는 “이야기가 어린이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아이들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연기했다”고 말했다. 박태우는 “처음에는 약간 웃기게 하고 싶었는데 모니터를 하다 보니 평범한 아이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조절했다”고 똑 부러지게 설명했다. 이유찬은 “한번개가 하늘을 날고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고, 시지(컴퓨터그래픽)도 많이 사용해서 퀄리티도 좋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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