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미국 드라마 ‘데들리 클래스’
사고로 부모를 잃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신비한 학교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그곳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교장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악의 무리들과 맞서 싸우면서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학교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낸다. 여기까지 말하면 <해리 포터> 시리즈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늘 우리가 방문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살인의 기술이다. 미국 비(B)급 정서를 대표하며 열광적인 마니아를 거느린 케이블 네트워크 <사이파이>가 만든 이 드라마에서 일반적인(?) 시청자들은 딱 두가지만 보면 된다. 얼마나 특이한지, 그리고 얼마나 스타일리시한지. 국내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볼 수 있는 미국 드라마 <데들리 클래스>다.
198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커스는 레이건 대통령이 복지 예산을 줄이면서 병원에서 쫓겨난 환자의 범죄로 부모를 잃는다.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엘리트 암살자 양성 학교인 킹스 도미니언 입학을 권유받는다.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여야 된다’는 신념 아래 탄생한 학교는, 막상 들어가보니 전세계 골칫덩이들의 집합소다. ‘나쁜 놈을 죽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이 이상한 학교에서,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가득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느낀다. 그리고 더 큰 폭력에 맞서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드라마 속 표현처럼 다른 사람을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약점이 되는 것이다. 킬러의 세계에서는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면 결국 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는 게 목표인 마커스는 과연 살인병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 정글 같은 학교에서 일단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데들리 클래스>는 릭 리멘더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 삼아 B급 정서의 매운맛을 보여준다. 미국 만화 특유의 화려한 액션,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를 바탕으로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싸움이 펼쳐진다. 영화 <킹스맨> <킬빌> <암살교실>, 드라마 <고쿠센>의 장점들이 다 모여 있다.
비급 정서를 담았지만 <데들리 클래스>의 제작진은 에이(A)급이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했으며,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루소 형제가 제작을 맡았다. 잔인하지만 따뜻한 매력이 있는 교장은 마동석 닮은꼴로 유명한 베네딕트 웡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자신의 이름 그대로 웡으로 등장하는 그분이다. 넷플릭스 <마르코 폴로>에선 쿠빌라이 칸으로 등장한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시리즈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 ‘한국계 주인공’을 연기했던 라나 콘도어는 <데들리 클래스>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며 압도적인 액션을 펼친다. 서울 광장시장에서 ‘먹방’을 하고 이사배와 메이크업쇼를 했던 라나 콘도어가 잔인한 살인병기라니, 무척 신기하다. 아, 물론 여기서도 한 남자를 두고 삼각관계에 빠진다.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아주 많이 다르지만.
<데들리 클래스>는 한계도 명확하다. 미국식 비급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나친 폭력성, 성별·인종·장애에 대한 차별, 마약과 환각을 유쾌하게 묘사하는 모습 등이 거북할 수 있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무엇을 위한 폭력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요즘 인기 예능프로그램 <강철부대>를 보면 한때 막강한 특수부대원이었던 이들이 선한 얼굴로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진짜 자신을 지킬 힘이 있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 법이다.
요즘 우리 드라마의 최대 화두도 ‘사적 복수’다. 드라마 <빈센조>(tvN)와 <모범택시>(SBS)에서 악을 처단하는 주인공에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미 기득권이 공고해진 사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지배구조를 뒤집는 쾌감이 짜릿하다. 하지만 남이 쓰는 폭력은 부당하고 내가 쓰는 폭력은 정당한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그냥 멋있으면 되는 걸까? 사람들이 끝없이 죽어나가는 ‘킬링’(Killing)으로 ‘킬링타임’을 했으면 된 건가? 덕분에 힘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조금 더 얻으면 그걸로 끝인 걸까? 시원하게 다 때려부수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도 뭔가 찜찜하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