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버지의 식당에서 카운터를 보는 20살 대학생이 있다. 그는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한다. <사랑의 맛>이라는 로맨스 드라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드라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화면으로만 만나던 사람들을 실제로 보게 된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쁜데,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을 연결하는 조력자 역할까지 부여받는다.

이렇게 설명하면 흔한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 평범한 대학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백인 여성이고 그가 빠져 있는 <사랑의 맛>은 한류 드라마다. 2016년 공개돼 전세계에서 사랑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드라마 월드> 얘기다.

한류 드라마 덕후들이 모여 만든 이 미국 드라마는 그래서 좀 특별하다. 주인공 클레어가 빨려 들어간 드라마 속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를 100개쯤 섞어 놓은 듯하다. 남자 주인공은 레스토랑 셰프이지만 재벌 2세다. 까칠하지만 속마음은 다정하다. 여자 주인공은 착하고 성실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려는 서브 여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챙기는 서브 남자 주인공이 있다. 남자 주인공이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어머니도 빠질 수 없다. 외국인이 동경하는 판타지의 세계가 한류 드라마라니 신기하면서도 뭔가 뿌듯하다.

고민이 있을 때 소주가 빠지지 않고, 로맨틱한 분위기에선 달콤한 배경음악(OST)이 흐른다. 갑자기 간접광고(PPL)가 등장하기도 하고, 남자 주인공이 복근을 보여주며 샤워를 하기도 한다. ‘김치 싸대기’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전세계 한류 드라마 팬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끝없이 선사한다. 한류 드라마의 구조를 치밀하게 분석한 노트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지민, 이지아, 최시원, 양동근, 샘 해밍턴 등 화려한 카메오 군단이 허를 찌르는 순간에 등장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 드라마 아니죠, 미국 드라마죠!

한국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미국 여자가 어떻게 한국어를 이해하냐고? 자막이 도와주니 <드라마 월드>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써도 된다. 봉준호 감독이 말하지 않았나.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더 큰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드라마 월드>에서 언어의 장벽 따위쯤 간단히 넘는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탓에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세상이 성큼 다가왔고, 집에 갇힌 사람들은 더 다양한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한류 드라마가 전세계에서 대박이 나는 동안 우리도 미국, 일본뿐 아니라 스페인, 벨기에, 인도 드라마까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덕분에 나의 ‘드라마 월드’도 조금 넓어졌고 <드라마 월드>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빠지고 싶은 멋진 드라마도 생겼다.

오랜만에 다시 <한겨레>에 칼럼을 쓰게 됐다. 이번엔 클레어처럼 빨려 들어가 주인공을 만나고 싶은 세계 각국의 드라마를 소개하려 한다. 드라마 덕후가 아니라도 알 만한 미드, 일드, 영드 외에 색다른 나라의 드라마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들려줄까 한다. 가끔 남지은·김효실 기자 등 깜짝 ‘드덕’(드라마 덕후)도 등판할 예정이다. 비록 몸은 방구석이지만, 드라마를 통해 마음만은 세계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참, 앞서 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월드>는 최근 하지원, 헨리와 함께 시즌2 제작을 마치고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 월드> 시즌2를 기다리는 것처럼 매주 토요일 이 칼럼을 기다릴 수 있도록 정주행과 역주행, 그리고 엔(n)차 시청을 반복하겠다. ‘드덕’들이여, 더 넓은 드라마 월드로 고고고!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