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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보검 아빠’ 박수영…온 우주가 인도하였다! 생활연기 끝판왕의 길

등록 2020-11-06 04:59수정 2020-11-06 09:13

[조연이 주연이다]
드라마 <청춘기록> 박보검 아빠
자연스런 생활 연기, 목소리 존재감
30년 전 처음 “친구 사귀러” 극단 찾은 후
많은 상황들이 배우의 길로 인도

사람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게 연기
내 이름 몰라줘도 괜찮아요
눈에 띄지 않아도 작품에 스며들어
옆집 이웃 같은 편안한 배우가 꿈
드라마 &lt;청춘기록&gt;에서 사혜준(박보검)의 아빠 사영남으로 나와 자연스런 연기로 인기를 얻은 배우 박수영을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lt;한겨레&gt; 사옥에서 만났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사혜준(박보검)의 아빠 사영남으로 나와 자연스런 연기로 인기를 얻은 배우 박수영을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보검 아빠’. 배우 박수영(50)은 요즘 이렇게 불린다. 지난달 27일 종영한 드라마 <청춘기록>(티브이엔)에서 사혜준을 연기한 박보검의 아빠 사영남으로 나와서다. 진짜 박보검 아빠 같은 자연스러운 호흡 때문에 여성 팬들은 이렇게도 부른단다. “아버님!” 유독 ‘누구의 아빠’로 나왔을 때 잔상이 오래 남았다. 2011년에는 유아인이 연기한 완득이 아빠(영화 <완득이>), 지난 2~4월에는 김태희가 연기한 유리 아빠(드라마 <하이바이, 마마!>)로 열연했다. “특별히 아빠 역할을 많이 한 건 아닌데, 아빠 역할을 많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그동안은 캐릭터 이름을 붙였는데 이번에는 ‘혜준 아빠’가 아니라 ‘보검 아빠’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왜일까요?”

<청춘기록>에서 그는 이전 아빠들과는 또 다른 울림을 줬다.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응원했던 아빠들과 달리 ‘보검 아빠’는 현실적이다. 혜준이 생활력 없어서 가족들 고생만 시킨 할아버지 사민기(한진희)처럼 될까 봐 연예인 꿈 접고 기술이라도 배워 돈 벌라며 강하게 훈육한다. 때론 너무하다 싶다가도 파스 붙여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네 아빠 같아서 가슴이 찡해오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공감 가는 아빠 아닐까요. 연예인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아빠(민기)를 통해 봤으니. 혜준이가 고생할까 봐 착실하게 일해서 가정 꾸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배우로서는 캐릭터에 접근하기는 쉬웠어요. 제 옛날 생각도 났고요.”

<청춘기록>은 박보검, 박소담에 하희라, 신애라 등 전·현직 청춘스타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고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의 일상 속 인물 같은 편안한 연기가 특히 도드라졌다. 그는 ‘내 말’을 했다. 대본 속 캐릭터가 되어 그 인물의 대사를 읊는 게 아니라 어떤 캐릭터든 나로 만들어 나의 말로 연기를 했다. 그는 “연기는 사람이 자기가 사는 걸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내 말을 해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흔히 말하는 생활연기를 넘어 일상 속에 녹아들어 내 옆에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다. 현봉식, 김미화 등의 배우가 여기 속한다.

목소리가 배우 자체를 커 보이게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목소리만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발음이 또렷해 대사가 귀에 잘 들어왔다. 할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은 혜준처럼 집안에 어떤 디엔에이가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예전에 아나운서 공채 1기가 되셨는데 할아버지가 못 하게 해서 포기하신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랜 연극무대 생활로 쌓인 내공도 저력의 배경이다. 그는 1990년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겠다, 배우가 되겠다고 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중학교 때부터 하던 야구를 그만두고 갑자기 막막해진 거죠. 보검 아빠처럼 이모부가 기술 배워두면 먹고살 수 있다며 내려오라더라고요. 부산 이모부 회사에서 선박 전기수리 일을 배우며 1년을 보냈어요.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 우연히 발견한 극단 문을 두드렸는데 그곳이 가마골 소극장이었을 뿐이에요. 하하하.”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워서 퇴근하고 매일 갔다”며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고난 끼가 있었나 보다. 갑자기 출연이 불발된 배우를 대신해 무대에 선 그를 본 이모는 “넌 연극을 하라”며 꽃다발을 안겼고, 일을 그만두고 연극을 하겠다는 그를 이모부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저보다 주변에서 제게 다 연기를 권했어요. 1995년 극단을 그만두고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분식집을 했어요. 그때 엄마와 같이 온 보살님도 그러셨다더라고요. 아드님은 다른 거 하고 싶어 하는 거 있다고. 그거 시키라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라기에 한달 만에 분식집을 관뒀죠.” 1996년 <곡마단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2000년 오달수와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만든 뒤, 그의 연기를 좋게 본 이성열 연출가와 이후 많은 작품을 했고, 재일교포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과도 인연을 맺게 되어 <야끼니꾸 드래곤>에도 출연했다. 온 우주가 그를 배우의 길로 인도하는 느낌이다. “보검 아빠처럼 누구라도 저를 말렸다면 지금의 박수영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친구들은 “네가 하희라씨와 부부로 나오다니 성공했다”고 부러워한다는데 그는 촬영 내내 미안했단다. 프로그램 갈무리.
친구들은 “네가 하희라씨와 부부로 나오다니 성공했다”고 부러워한다는데 그는 촬영 내내 미안했단다. 프로그램 갈무리.

그는 “연기를 시작하는 15년이 지나서야 연기를 즐기게 됐다”고 했다. 즐기기 시작하자 훨훨 날았다. 살펴보면 수많은 작품 속에 그가 있었다. <박하사탕>에서 소풍 나온 공장직원을 시작으로, <닥터 프리즈너>의 보안과장, <영혼수선공>의 정신과 의사 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약 60여편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출연했다. 특히 2011년 <완득이>에서 완득이 아빠로 배우로서 얼굴을 알렸고, 2016년 영화 <덕혜옹주>에서 영친왕으로 연기력을 과시했다. 그는 개성이 강해서 한번 봐도 크게 각인되는 배우들과 달리 단번에 눈에 띄진 않지만, “작품 속에 스며들어 더 다양한 얼굴을 그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극단을 찾아간 뒤로 30년. 그는 이제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찾아주는 곳이 많아진 배우가 됐다. 한번도 자신이 유명해졌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는데 <청춘기록>은 “친구들이 내가 성공했다고 인정해준 작품”이란다. “친구들이 그래요. 네가 하희라씨와 어떻게 부부로 나올 수 있냐고. 짜식, 정말 성공했다고. 우리의 청춘스타였던 배우와 내가 부부라니, 전 연기하면서 내내 미안했지만요.” “내 이름을 몰라줘도 된다. 난 영원히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배우가 되겠다”는 그는 지난 4월에는 “너무 바라던” 결혼까지 했다. 다 이뤘다. 이 사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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