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온전히 취미로 하기 때문에 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고 나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시작한 지 이제 6주째라 ‘나비야’를 겨우 끝내고 ‘예쁜 새’와 ‘주먹 쥐고’의 산을 넘어 ‘봄바람’을 켜기 시작했다. 퇴근 뒤 직장인이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는 건 흔한 일인지 레슨 선생님은 나 말고도 직장인 3명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 평일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주말에는 컴퓨터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뭐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배우기를 즐기는 진취적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뭐라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불안해서다.
직장 생활 8년차지만 그동안 퇴근 뒤 무언가 습득하기는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대실패한 것은 영어 학원이었다. 야근이 많은 회사를 다닐 때라 출근 전에 들러서 하루를 길게 쓰는 부지런한 인간이 될 테야, 야심 차게 새벽반을 끊어놓고 출석률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보다 잘사는 게 분명할 학원에 애꿎은 학원비만 기부했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언어 실력이나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강박은 아마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참… 취업하면 이제 뭐 안 배워도 될 줄 알았지.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아서
의지력 박약의 인간에게 ‘퇴근 후 기술 습득하기’는 아니 될 말씀이라는 걸 깨달은 뒤 한동안은 ‘무언가 배우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또 미래에 대한 불안이 피어오르면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작가 교육원엘 다녔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니 이번에 해보자는 게 교육원을 다니기로 한 이유기도 했지만 80만원(3개월) 상당의 학원비를 결제하게 나를 내몬 것은 이번에도 역시 불안함이었고 좀 더 솔직하게는 다른 직업으로의 탐색이었다.
직장을 몇살까지 다닐 수 있을까, 마흔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50살에는? 60살에는? 아니 그렇게 먼 미래까지 볼 필요도 없다. 당장 다음달에도 이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 내년에는? 이 월급으로 돈을 모으고 미래도 준비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빨리 커리어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이 현명한 게 아닐까. 늦은 밤 침대에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갖은 고민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고양이 한마리와 혼자 살고 있는 지금. 앞으로 결혼 계획도 없는 나는 먼 미래에도 계속 혼자일 텐데, 그때까지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한달 벌어 한달 먹고사는 현재를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할 수 있을까. 배우자가 있다면, 아이가 있다면 이런 불안함이 없었을까. 혼자 사는 집은 컴컴하고 고요했고, 시간이 많을 때에는 이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독과 불안함이 엄습했다. 쉬고 있어도 불안했다. 이게 다 내가 전문직이 아니어서일까, 혹은 계속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일까.
드라마 작가 교육원은 교육생을 뽑을 때 이력서와 면접 과정을 거치는 교육기관인데 면접에서 만난 유명 드라마 작가 선생님은 30대(어디 가면 젊다는 소리 들어본 지 오래된)인 내 나이를 두고 ‘딱 좋네’라고 말했다. 너무 어리면 드라마를 쓰기 어렵다고, 오히려 일정 기간 사회생활을 겪고 자기 글감이 많이 생긴 30대가 드라마 작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라는 것이었다. ‘뭘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는 소리를 들은 게 몇년 만인지! 20대가 아니어서 시작하기에 더 괜찮은 일도 있구나. 출발선에 오랜만에 다시 선 기분은 상큼했다.
같은 반에는 이제 막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20대부터 아이들을 다 키우고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원에 온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1차 시놉시스를 쓰고 2차 대본을 써 와서 합평(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수업 형식)을 하는 방식의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같은 반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직업도 각양각색이었다. 의사, 간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의학 드라마 시놉시스를 썼고, 교사로 재직 중인 사람은 학교 드라마를,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법정물을 썼다. 시놉시스와 주인공 직업을 보면 작가의 현 직업까지 엿보였다. 배경이 다르고 직업이 다른 주인공들은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로맨스 드라마), 부모님의 빚을 떠안아 절망하고(가족 드라마), 남의 집에 침입한 범죄자를 뒤쫓기도(범죄 드라마) 했다.
우리 반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수업 일정이 반 정도 지났을 때 말했다. “여러분 대본에는 판타지가 없어요.” 그랬다. 우리 대본에는 백마 탄 왕자님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언제든 현재의 삶에서 더 외곽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함만 엿보였다. 그것은 주인공이 기혼이어도 마찬가지였고, 현재 안정적인 직장에서 괜찮은 수입을 받고 있어도, 취업을 준비하는 만년 취업 준비생이어도 똑같았다. 다 같이 자기 삶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주인공들이 드라마 기초반의 시놉시스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기초반과 연수반을 거치고서야 나는 드라마 작가라는 다른 직업에 대한 도전을 포기했다. 해보고 나서야 내 길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라곤 전문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도, 아이가 있고 배우자가 있어도 똑같이 미래는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 있어도 사람들은 불안하다고 말했다. 불안은 누구나 지니고 있고, 평생 우리가 다스리며 살아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드라마 바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 전환 탐색에는 실패했지만, 역시나 기술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얼마 전부터는 주말에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포토샵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번에도 직업군과 나이가 다양했다. 95년생부터 68년생까지, 취업 준비생부터 창업 준비자, 디자이너와 마케터, 건축사무소와 영상제작사 직원까지…. 스무대 안팎의 컴퓨터가 놓인 작은 교실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미래’를 준비하거나 자격증을 준비하기 위해 포토샵을 배우려 토요일 저녁에 여기 모였다고 말했다. 모니터 불빛만 반짝이는 어두운 교실에서, 처음 배우는 낯선 프로그램 앞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조심스럽게 “이거 안 돼요, 선생님”을 중얼거리면서 우리의 불안함은 좀 나아졌을까.
내가 불안한 것은 내 직업이 언제든 부표처럼 밀려날 수 있는 일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가슴 위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가슴이 무겁고, 옅은 우울이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내가 불안정한 직업군의 비혼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나와 형편이 다른데도 똑같이 불안한 사람들과 한 교실에서 이미지 합성을 배우면서 나는 생각했다. 서로 다른 미래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함께 불안하구나.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것, 포토샵을 배우는 것은 내 불안함을 그다지 완화해주지 못했다. 대신 나는 바이올린의 미, 도, 라 계이름을 보고 또박또박 운지를 하고 음을 낼 때 행복했다. 오로지 ‘스즈키씨’(바이올린 초급자는 대부분 스즈키 바이올린 책으로 학습을 시작한다)에게 집중해 크레센도(점점 세게)와 메조포르테(조금 세게)를 정확하게 소리 내기 위해 애쓸 때, 나는 즐겁다. 뒤늦게 음악에 대한 재능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이건 ‘밥 먹고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이제 와 바이올린을 잘한다고 해서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연주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온전히 취미로 하기 때문에 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나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못 해도 괜찮아, 하지만 내가 손가락으로 도를 누르면 도 소리가 나고 라를 누르면 라 소리가 울리면서 미와 라 현만으로 ‘나비야’ 한곡을 완성할 수 있는 이 악기를 목과 어깨에 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차피 불안은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하니, 현재 낼 수 있는 소리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래서 요즘 바이올린을 배운다.
늘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