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잘 살자’던 친구들이 ‘결통사고’를 당한 뒤 내게도 사고를 부추긴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남지은의 실전싱글기 12
‘홀로 동지들’의 배신
사실, 싱글들의 “혼자 살겠다”는 주장은, 믿을 게 못 된다. 독신주의자더라도 영혼을 사로잡는 남자가 나타나면 주저 없이 결혼행진곡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연예인에 빠지는 ‘덕통사고’처럼, ‘결통사고’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혼자가 좋다며 독신을 즐기자 목청껏 외쳤던 타 부서 최아무개 선배도 그 메아리가 소멸하기도 전에 결혼했다. 지금도 그 선배를 만나면 “배신자”라고 부른다. “아, 너랑 놀 때가 내 리즈시절이었다”며 선배는 빈말을 해대지만.
주변에 결의를 다졌던 ‘홀로 동지’들이 하나둘 떠날 때면, 살짝 마음이 흔들린다. 늙으면 집 짓고 모여 살자더니, 고독사하지 않게 매일 생사확인 해주자더니, 다른 남자와 이걸 대신한다. 크리스마스, 연말 등 때가 되면 모이던 동지들이 하나둘 줄어든다. 이러다 혼자 남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우려는 점점 현실화돼가는 걸까. 또 다른 두 명이 11월 같은 날 홀로를 졸업한다. 평생 혼자 살겠다며 노년을 대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따뒀던 여자사람 친구와, 자신의 인생에 여자는 없다던 남자사람 친구다. 둘 다 언제 연애했는지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청첩장을 날렸다.
제대로 ‘결통사고’를 당했다. “커피숍에 갔는데, 이 사람이다 싶은 남자가 앉아있는 거야.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남자를 보니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가서 대뜸 물었어. ‘저랑 만나지 않겠어요?” 헐. 남자사람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원래 알던 동생인데, 어느 날 갑자기 여자로 보이는 거야. ‘결혼하자’는 말이 그냥 나오더라고.” 이 순간, ‘헐’이란 단어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 허~~얼.
첫눈에 반하는 건 20대나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30대, 40대가 되어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한다니. ‘결통사고’를 당한 두 친구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연애 기간이 짧다. 여자사람 친구는 3개월이고 남자사람 친구는 5개월이다. “사계절은 겪어봐야지”라는 조언에 그럴 필요 없다 입 모으는 것도 같다. 그들은 “어릴 때 첫눈에 반하는 것과 지금 반하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생을 좀 살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깊어진달까. 그냥 딱 봐도 이 사람 속이 다 보이더라고.” “살아온 삶이 외모에 드러난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아. 사람 모르는 건데, 근데 내 사람은 알겠더라고.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속까지 한번에 스캔이 쫙 되더라고. 더 두고 볼 필요가 없어.” 나이 들어 첫눈에 반한다는 건 무슨 신 내림이라도 받게 되는 걸까.
어쨌든, ‘우리끼리 잘 살자’던 친구들이 결통사고를 당한 뒤 내게도 사고를 부추긴다. 그들은 “배신자”라 부르짖는 내게,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것”이라는 똑같은 변명을 해댄다. “혹시, 아냐? 하객 중에 ‘결통사고’ 날 사람이 있을지.” 나를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하필 11월3일 내 생일에 결혼을, 그것도 한창 놀아야 할 오후 4시와 6시에? “결혼식 날 생일파티도 해줄게. 축가로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줄게. 케이크 컷팅할 때 같이 하자.” 헐. 어쨌든 홀로를 졸업한 친구들아. 행복하게 잘 살렴. 그리고 홀로 동지들이여, 결통사고에 철저히 대비합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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