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음식 웹툰으로 꼽히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아시나요? 최근 여덟 번째 단행본을 출간한
조경규 작가를 만났습니다.
조경규 작가는 2010년부터 다음 웹툰에서
‘오무라이스 잼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만화잡지 ‘팝툰’에 ‘차이니즈봉봉클럽’을, <씨네21>에 ‘팬더댄스와 명화극장’을 연재했고요.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만화는 군침이 돌게 할 정도로 생생한 음식 묘사로 유명합니다. “한 컷, 한 컷 내리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고파진다”고 독자들이 호소하곤 하죠.
많은 독자들은 ‘오무라이스 잼잼’의 매력으로 음식과 일상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점을 꼽습니다. 이번 단행본 8권의 표지를 맛깔나게 장식한 그림도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꼽히는 치킨입니다. 그의 만화엔 귤, 삼각김밥, 김, 핫도그, 떡볶이, 삼겹살처럼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등장합니다. “아아니∼! 이 맛은!!!!”이라고 외치며 현란한 수식어로 맛을 표현하는 대사는 그의 만화에 없습니다. 대신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해 음식과 관련된 소소한 일화나 역사 등을 설명해줍니다. 그의 만화가 지닌 매력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습니다.
#1. 아날로그
“종이 위에 사각사각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
조경규 작가가 작업을 할 때면,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수북이 쌓입니다. 컴퓨터에 연결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인 ‘타블렛’이 보편화되고 심지어 연필의 질감과 필압까지 그대로 재현해주는 ‘아이패드 프로’가 나와도 그는 꿋꿋이 ‘샤프’와 ‘펜’을 고집합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한 뒤 컴퓨터로 색을 칠하는 게 제가 계속 유지하는 방식이죠.”
올해 ‘시즌 9’를 연재하는 동안 그가 쓴 0.1㎜ 펜은 14자루, 사용한 스케치북은 40쪽짜리 6권에 달합니다. 조경규 작가는 처음 이메일이 등장했을 때 중요한 이메일을 일일이 종이로 프린트 해놨을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지만, 오히려 이런 성향 때문에 만화를 그릴 때 양질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974년 생인데 제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그런 삶을 산 세대 같아요. 20대 초반에 인터넷이랑 이메일이 처음 나오고, 20대 후반엔 ‘디카’가 나왔죠. 그 전까지는 손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모든 정보는 책과 신문, 잡지에서 얻었어요. 자료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흡수하다가 생산은 ‘디지털’로 하는 셈이죠. 인터넷 뿐만 아니라 책에서도 자료를 얻는 옛날 방식이 남아있다 보니까 오히려 양질의 데이터가 쌓여있는 것 같아요.”
조 작가는 음식이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일 때까지 색깔을 하나하나 덧입힙니다. 그것도 ‘마우스’를 사용해서 말이죠.
‘시즌5 후기’에서 밝혔듯 그는 자신이 “마우스를 좀 잘 다룬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그에게도 그리기 어려운 음식은 있습니다. “짬뽕밥을 그린 한 컷은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건 ‘장어구이’ 같은 음식입니다. 음식 색깔이 짙을수록 어렵거든요. 무작정 까맣게 칠할 수도 없고요.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그냥 그리면 시원한 느낌이 안 드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잠깐! 하나씩 음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구경해볼까요?
#2. 숙성
“만화도 장맛이랄까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죠.”
그는 ‘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식당을 찾아갈 때도 ‘원조’인 식당으로 향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원형의 맛을 본다는 즐거움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20년 전부터 도시락집, 피자집 등 광고 전단지를 모았고, 여행을 다니면서는 음식·요리책 등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습니다. 꼭 만화를 위해 모은 건 아니지만, 오래된 자료들은 만화를 그릴 때 종종 좋은 소재가 되죠.
조경규 작가의 만화는 그의 습성을 닮아 ‘오래 묵힌’ 매력이 있습니다. 음식과 일상, 음식과 역사, 음식과 영화·음악 등 각기 다른 요소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점이 ‘오무라이스 잼잼’의 특징인데요, 이런 강점도 숙성 과정의 결과인 셈이죠.
“웹툰을 구성하는 두 축은 음식과 일화예요. 그런데 이 두 개가 동시에 준비되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일화와 어떤 음식을 매치할까 고민하다가, 매칭이 되면 한 화가 완성이 되는 거죠. 지금 그리고 싶은 일화가 있어도 (딱 맞는) 음식이 없으면 3년 뒤에 만화로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는 일단 콘티를 간단히 스케치를 해 둡니다. 그 스케치를 일정 시간 서재 한 쪽에 저장해뒀다가 ‘때가 됐다’ 싶으면 다시 꺼내 작업에 돌입하죠. 두 작업 사이의 시차는 평균 3개월, 길면 1년을 넘는 때도 있습니다. 한 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다 찰 때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작품이 나오면 후회하는 건 하나도 없다. 한 화, 한 화가 100%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3. 음식백과사전
“저는 이 책이 100년 후에 봐도 재밌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조경규 작가가 오랜 숙성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하나, ‘오래오래’ 남는 음식 만화를 그리는 게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10년, 50년, 100년 뒤에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빨리 변하는데 뭔가 남지도 않아요. 음식 유행도 마찬가지예요. ‘모카번’이 유행처럼 쫙 깔려 있다가 사라지고, 벌꿀 아이스크림 나오고 없어지고, 대만카스테라가 나왔는데... 또 다 없어져요. 한두집은 남아있어야 할 텐데요.”
‘오랫동안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책’을 목표로 해서 그런 걸까요. 그의 만화책은 한 편의 ‘음식백과사전’을 보는 듯합니다. 특히 한 음식의 다양한 종류를 선보이는 부분은 절로 군침이 돌게 하죠. 작가도 “딤섬의 종류를 그린다거나 세계 각국의 맥도날드 음식을 그릴 때처럼 한 화에 여러 음식을 ‘뭉텅이’로 그릴 때가 재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다들 마라톤 앞쪽 그룹에서 헉헉대며 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로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뭐든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 ‘느림의 미학’이 담긴 조경규 작가의 만화는 그래서 한 편의 휴식을 선사합니다.
혹시 오늘도 스마트폰을 보며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지 않나요? 오늘 하루는 잠시 숨을 돌리고 음식의 맛을 천천히 음미해보는,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조경규·인터파크 제공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